일본 대중목욕탕 흥망성쇠
※ 다음 글은 2015년 7월 4일자 아사히 신문에 게재된 기사를 번역한 것입니다. (기사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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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 이야기) 목욕탕 전성기, 10엔에 하아~ 극락극락.
전시 중, 도쿄 대공습으로 격감했던 목욕탕은 전쟁이 끝나자 급격히 늘어나 1964년 도쿄 올림픽 무렵에 전성기를 맞았다.
총무소 1의 집계에 따르면 당시 자택에 욕실을 갖춘 가정은 42.2%(68년). 목욕탕은 서민에게 생활의 일부였다.
이 휴식의 장소는 연료비와 인건비 인상을 위한 파업으로 인해 폐쇄된 적도 있었다.
올림픽 전년 8월 31일자 아사히 신문은 "조합이 요금 인상을 신청했지만 정부와 도가 10개월이나 방관하면서
조합원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라고 업자 측의 말을 전하고 있다.
성인 요금 19엔에서 23엔으로의 인상. 그 가운데 파업도 참여하지 않고 10엔으로 영업을 계속하던 도쿄도 고토구의
"스나마치 목욕탕"은 크게 번성했다. 매일 아침 리어카를 끌고 가까운 화물역을 지나며 대합실을 청소하고
석탄 찌꺼기와 톱밥을 얻어가는 등 궁리를 이어나간 것.
"지금 목욕탕 한 곳이 폐업할 때마다 제 작품도 사라져 갑니다. 씁쓸해요"
일본에 몇 안 되는 목욕탕 화가 나카지마 모리오 씨(70)는 한숨을 쉬었다.
커다란 탕에 몸을 담그고 올려보는 웅장한 후지산.
후쿠시마현 이타테 마을에서 18세에 상경하여 처음 본 후지산 그림에 마음을 빼앗겨 공장 노동자에서 화가로 전향했다.
"목욕탕 문화가 줄어들고 있습니다" 성인 460엔이 된 도심의 목욕탕의 수는 올해 5월 말까지 644곳.
가정용 욕조가 보급되고 경영난도 겹쳐 전성기의 4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
스나마치 목욕탕과 함께 스나마치 긴자 상가에서 "사쿠라탕"을 운영하던 또래 연배의 업자는 말했다.
"손님들이 계속 해달라고 말해서 힘을 내고 있고 있습니다만 더는 한계입니다"
6월 15일, 아쉬워하며 폐업하였다.
- 総務省, 행정관리‧지방자치‧방송‧우정사업 등을 관장하는 중앙 행정 기관. 「総務大臣そうむだいじん」을 장(長)으로 한다. 2001년 総務庁そうむちょう ‧郵政省ゆうせいしょう ‧自治省じちしょう 등을 고쳐 설치. [본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