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 girl's diary

나무의 몫까지

또복 2015. 12. 9. 20:28

 

모두들 난방을 도시가스나 등유 내지는 전기장판으로 해결하고 있겠지만 남양주에선 아직까지 난로, 그러니까 나무 장작을 연료로 하는 방식이 유효하다. 이는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아주 근사하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땔감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땔감을 마련하는 행위는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오전 내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앞부분을 번역했고, 식사 후에는 땔감 마련하기에 나섰다. 집에는 나뿐이었고, 제대 이후로는 처음 입어보는 미 공군 점프슈트까지 착용(군대에서 챙겨온 깔깔이 바지까지 껴입었는데 입는 순간부터 땀이 차리란 걸 직감할 수 있있다), 갈색 체크무늬 중절모까지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죽은 나무를 줍기 위해 뒷산을 오르는데, 이웃집 부부가 아주 조심스럽게 누구냐고 물어왔다. 하긴, 공군 점프슈트 위에 용이 그려진 화교식 점퍼를 입고 손도끼를 쥔 채 산을 오르는 청년을 본다면 모두가 겁에 질릴 것이다. 나는 앞집에 살고 있으며, 땔감을 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뭔가, 프라이빗한 남의 공간을 마구 침탈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에는 죽은 나무가 뜨문뜨문 떨어져 있었다. 굳이 깊은 산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산의 초입에서 나는 나뭇가지들을 주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밤송이에 찔리긴 했지만 아무튼 소득은 괜찮았다. 마당까지 질질 끌고 와 시커멓게 녹이 슨 톱으로 슬근슬근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나무는 좀처럼 잘리지 않았다. 땀이 송골송골, 깔깔이 바지 안으로 맺혔다. 그것은 원래 영하 날씨의 혹한기 때나 입는 것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드는 생각인데, 기름을 대체하기 위해 원시적인 인간의 체력만을 쓰는 것은 아주, 아주 혹독한 일이다. 차를 타면 5분에 주파할 거리를 30분 내내 걸어온다거나 실내 온도 몇 도를 올리기 위해 이렇게 톱질을 온종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몸을 쓰는 일, 누군가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본적으로 무의미하면서 전방 주시 운전처럼 잡념을 허락치 않는 노동은 실로 신성하다. 이를테면 설거지, 잡초 뽑기, 그리고 톱질 등등. 아, 운동 가운데서는 수영이 포함될 수 있겠다. 런닝이나 웨이트 운동은 짜증날 정도로 힘들지만 수영은 특성상 죽음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유희하는 종목이므로 짜증이고 투정이고 할 수가 없기에, 집중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수확한 나무들을 모조리 베고, 마당의 장작 더미에 쌓으니 흥부적인 쾌감이 느껴졌다. 겨울 축적의 쾌감. 녹슨 톱으로 낑낑거리느라 죽을 맛이었는데, 어깨 저린 건 둘째치고 장작 밟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런 고단함도 사라졌다. 하여, 이차 수확에 나섰다. 이번엔 이웃집 부부가 볼 수 없는 다른 산으로. 넝쿨을 피해 강아지처럼 수그린 자세로 산을 올랐다. 몇 차례나 죽은 나뭇잎들로 푹신푹신한 바닥. 땔감으로 적당한 죽은 나무를 발견하고 횡재했다 싶었다. 워낙 커서 끌고 내려오는 데에 애먹었다. 넝쿨에 걸려서 이리저리 잡아당겨야 했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톱질을 하려는데, 뭔가 불안하다 싶더니만 이놈의 톱날이 뎅겅 부러지는 게 아닌가. 공구 서랍에서 다른 톱을 찾았지만 상태는 더 끔찍했다. wd40을 범벅으로 뿌렸지만 별 효능이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차를 끌고 동네의 철물점을 찾았다. 새로 생긴 철물점엔 다른 손님들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접대하는 자세가 형편없었다. 친절과 배려라곤 조금도 없는, 자신이 응대를 하는 게 자존심 상해 참을 수 없단 걸 구태여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머저리였다. 더군다나 톱들은 모두 비쌌다. 기가 막혀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일제라나. 얼른 뛰쳐나왔다. 다음의 철물점은, 중학교 동창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점프슈트를 입고, 맥 드마르코 같은 모자를 쓴 중학교 친구를 알아보진 못하겠지. 다행히 동창의 어머니는 나를 몰라봤고(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톱도 조금 쌌다. 모조리 베어주마, 하는 각오로 다시 집으로 귀환. 라디오에서 배칠수와 영미 씨? 누군가가 신청곡을 받아 짧게 성대모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자아내는 방송이었다.

 

새 톱을 스르릉 꺼내 나무를 베는데, 신세계였다. 나무가 단칼에 베이는 것이었다. 전까지 녹슨 톱으로 흥부 부부가 박 썰듯이 낑낑대던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아무튼 난 신이 났다. 산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단숨에 베었다. 장작 더미도 제법 높이가 쌓였다.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톱질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로서 좀 이상한 일이다. 오버드라이브, 그건 나와 맞지 않는다. 난 항상 그만 두어야 할 때를 잘 알았고, 거기에 순응하며 무리하지 않았다. 항상 적당한 수준에서 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의 나라면 그만 두었을 때를 훨씬 초월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일본어 번역을 하다 탄력을 받아 그날 밤 내내 뭘 했는지는 비밀이지만. 아무튼 마당에 쌓여 있던 나무까지 손을 댔다. 상당히 고단한 작업이었다. 산에서 주워온 죽은 나무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한 각목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난 굴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슥슥삭삭 베었다. 깔깔이 바지와 점프슈트 안은 이미 땀으로 젖었다.

 

모든 장작을 베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소파에 앉아 넋을 잃고 잠시 땅콩 쿠키를 먹다가 침대에 들어가 재즈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중고 서점에서 산 <거리의 미학>이란 책이었는데, 일제 시대에 출판된 것처럼 절반이 한문인 데다가 일본식 번역투가 역력했다. 그래도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감흥을 준다. 몇 줄 인상적으로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30분 정도. 아마 <센트럴 파크에서의 스케이팅>을 듣던 중일 게다. 해가 지기 전에 체육관을 다녀왔다. 아버지와 둘이 청하를 마셨다. 아버지는 가문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나무의 몫까지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겠단 한낮의 다짐이, 톱질의 뽀얀 가루처럼 일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