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 3
비가 통 내리지 않는, 가공할 만한 이른 혹한의 초여름이지만
그럼에도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의 사랑스러운 텃밭에서.
이번주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이라면, 오이와 토마토를 심은 제3구역에
넝쿨화 되어가고 있는 모종이 의지할 만한 대를 설치한 것.
처음엔 그냥 꼬챙이를 꽂아놓으려고 한 게 전부였으나 어머니의 제안은 달랐다.
어머니의 말대로 주변의 다른 텃밭들을 살펴보니, 대를 삼각형 모양이라든가 매트리스 뼈대처럼
그물을 엮어 놓는다거나, 입체적으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넝쿨이 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진취적으로 자랄 수 있게끔 배려한 설치 같았다.
이에 느낀 바 있어 곧장 따라해 보았다.
대를 삼각형 틀로 설치하는 것까진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역시 그물 엮는 것이었다.
비닐 끈 대신 집에 굴러다니는 천 쪼가리 재질의 끈을 이용해서인지 팽팽하게 묶이지 않고
후질근하고 맥아리 없이 흘러내리는 느낌. 나중엔 나도 자포자기하여 설렁설렁 하다보니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한심한 몰골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텃밭의 설치물을 살펴보니
아예 완제품으로 나온 듯한 그물을 매달아놓은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거의 인간 거미 수준의 공작 능력으로...
무게가 점차 상당해져 바닥으로 구르고 있던 오이도 (일단) 그물에 걸터두었다.
오이나 나나 눈물겹다. 그런데 이 녀석의 끈기랄까, 햇빛에 대한 열렬한 갈망은 굉장하여
꼬챙이만 꽂아두었을 때에도 덩쿨이 빙글빙글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그 힘을 발휘하여 저 흉물스러운 그물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기를...
그런데 슬픈 소식을 하나 발견. 오이 모종 하나가 왜인지 뚝 꺾여 있었다.
들고양이가 지나가다 밟은 것인지, 아무튼 큰 줄기가 으드득 꺾여 그 부분이 괴사하듯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다른 모종에 비해 자라지도 않고 잎사귀도 힘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물을 주고, 흙을 덮어주었으나 소생이 쉬울 것 같진 않다. 힘내라!
토마토는 아주 흔쾌히 자라고 있다. 호쾌하다.
텃밭을 구경하던 어머니가 즉흥적으로 나뭇가지를 박았는데, 그게 저 처참한 철골과 빨간 줄 사이에서
전원적인 향취를 자아내 제법 멋스럽다. 이런 식이다.
덤불 숲 사이에 들고양이가 앉아 있다.
몇 주 전부터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
다 좋은데, 텃밭을 건들진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