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 girl's diary

14년 10월 29일

또복 2014. 12. 14. 18:46
우연히 아침에 들은 롤러코스터의 <숨길 수 없어요>의 효력은
정확히 24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나는 그 여파 속에서 신해철 씨의 죽음을 접했고,
화교문화의 공연 영상은 전입 후 처음으로 다시 보았고,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을 독파했다.

<숨길 수 없어요>에 숨길 수 없는 정서랄까, 짙은 감정선이 있는데...
내겐 어떤 불가능한 관계로 한없이 전락하면서도
그 추락을 더 이상 자기조차 제어할 수 없는,
삶을 파국으로 치닫게 하는 강렬한 감정과 이에 무력한 나를 본다.

뒤라스의 <연인>은 전에 읽은 <태평양의 방파제>와 같은 이야기를,
다소 다른 각도로 하고 있다. 마치 같은 상황 속의, 같은 인물이
다른 속내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프랑스령 식민지에서의 끔찍한 삶이 개인들을 절망에 빠트리고
모든 것이 고갈된 파국 속에서 인물들은 허우적대다
이내 소실되고 만다. <태평양의 방파제> 같은 경우,
파국 뒤의 싹을 얘기함으로써 미래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논하나
<연인>은 오히려 그러한 싹마저 고통의 연장으로서,
절망의 변증법처럼 희망과 좌절이 되풀이되는 삶을 더없이
건조하고 감정 없이 읊조릴 뿐이다.

나는 처음에, <연인>에 등장하는 주인공의 정서와
<숨길 수 없어요>의 감정이 일치하지 않을까 싶어
능수능란하고 뻔뻔한 DJ처럼 매칭시켜 이입해보았으나
메콩강 나룻배에서 어린 창부처럼 우두커니 서있는 15세 소녀의
욕망의 근원 속으로 사회의 관습과 형식을 집어던지고 투신하는
성장담보다는 오히려 3천 배 정도 감정과잉된 홍상수 영화가
더 잘 어울리지 않을 성 싶다.
혹시 <강원도의 힘> VHS 테이프의 카피를 기억하는가?
그런 사랑은 없다... (이 말줄임표가 포인트!)

아무튼 난 참 중독에 약하고, 늘 충동에 헌신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딱히 저항할 생각도,
개선하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는데 이제는 엄격히 통제해봐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열심히 살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