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 girl's diary

14년 10월 3일

또복 2014. 12. 14. 18:34

1.
"오늘은 (부산영화제를 못간 나만의) 영화제 첫날입니다.
개막작은 에릭 로샹의 <동정없는 세상>입니다"
란 말을 일본어로 쓰고 싶었으나 실패.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다.

 

2.
국군의 날부터 일요일까지 연휴.
영화를 실컷 보고 있다.
에릭 로샹의 <동정없는 세상>
아벨 페라라의 <킹 오브 뉴욕>
사무엘 풀러의 <픽업 온 사우스 스트리트>
세 편 모두 만족스러워 기분이 참 좋으다.

 

<동정없는 세상> 같은 경우, 영화 보면서 큰 웃음 터진
나로선 참 드문 경험을 마련해준 한 장면이 있었다.
전 여자친구를 피해 발코니에 숨어있다가
현 여자친구의 전화가 오자 '에라, 모르겠다'
부웅 집 안으로 뛰쳐들어오는 장면은 정말이지 압권.

만약 이뽀와 나탈리가 결국 어긋난 채,
그러니까 이뽀는 구속되고, 나탈리는 혼자 춤을 추며
환희의 임계점과 실망의 출발점 사이에서 끝났다면
무지 비극적이겠으나, 사실 타 영화들이 곧잘 써먹기도 했고
에릭 로샹은 조금 긍정적이랄까, 판타지적인 결말로 쫑.

 

프란시스 코폴라, 마틴 스콜세지, 우디 알렌 등
뉴요커란 정체성을 구태여 강조하는 감독들에 비해
아벨 페라라의 위상과 인지도는 글쎄, 놀랄 정도도 낮다.
아마 코폴라, 스콜세지, 우디 알렌은 술을 마시며
이렇게 말할 지도 모른다.
'아벨 페라라, 그 녀석 너무 솔직하다니까'

<악질 상사>에서도 잘 드러나지만 아벨 페라라의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총과 마약과 욕과 쓰레기로
샤워를 두 시간 정도 하는 기분이다.
도시 뒷골목에서 노숙하는 기분.

<킹 오브 뉴욕>도 마찬가지인데, 유명 배우들의
푸릇푸릇한 시절 얼굴을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로렌스 피쉬번(분명히 크레딧엔 래리 피쉬번으로 나온다.
로렌스 피쉬번의 동생인가 했는데, 로렌스 피쉬번 본인인듯)
웨슬리 스나입스, 데이빗 카루소 등등.
특히 모피어스로 무게 잡던 로렌스 피쉬번을 기억한다면
정신 나간 흐긴 깽으로 까부는 모습을 보고 충격받을 수 있다.
마찬가지로 CSI 마이애미에서 무진장 진지한 수사반장을
연기하는 데이빗 카루소의 혈기왕성한 모습을 비교하는 것도
재미있다. 영화는, 뉴욕의 왕으로 군림하던 프랭크 화이트와
그를 추격하던 경찰이 맨하탄 전철에서 대치하고
총에 맞은 프랭크가 교통정체로 옴짝달싹 못하는 타임스퀘어
앞에서, 택시에 앉아 조용히 눈을 감으며 끝나는데
어쩐지 뉴욕이란 거대 생물의 혈관에 노폐물이 쌓여
경동맥 협착증을 일으킨 것만 같은 장면이었다.

 

사무엘 풀러에 대한 사소한 일화.
대학 시절, 촬영 감독과 스텝의 대화를 엿듣는데
그들이 아무렇지 않게 사무엘 풀러의 영화를 얘기했고
정말이지 사무엘 풀러란 이름을 처음 듣던 나는
큰 충격에 빠졌다.

 

3.
문득 느낀 건데,
페이스북을 컴퓨터로 한다는 건
좀 멍청한 짓인 것 같다.

 

4.
건강해, 라는 말은 종종 상처가 된다.
그냥 '앞으로 널 볼 일은 없겠지.
그래도 난 예의는 지켰다?' 는 느낌.

 

5.
왜 이렇게 놀고 있냐고 물으신다면,
일요일까지 연휴라고 말하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