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 girl's diary

노력은 당연해

또복 2015. 5. 26. 23:04

 

 오늘 저녁 식사를 하던 중 그야말로 퍼뜩,

 난 정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건 좀 이상한 느낌이었는데,

 너는 참 창의력이 출중한 아이로구나, 하는 얘기를 어려서부터 하도 들어서

 정말 나는 창의력이 출중한가보다, 하고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가

 사실 창의력이 없거나 창의력이 없다고 일컬어지는 사람들과 별 차이가 없는 수준의 창의력을 갖고 있음을

 뒤늦게 깨달았을 때의 기분이랄까. 아무튼 난 정이 많다고 이전까지 생각해왔던 것이다.

 

 여지까지 많은 사람들은 나를 (내가 봤을 땐) 큰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주었는데,

 사랑을 물리적인 교환의 차원으로 보자면 난 그들에게 받은 양만큼 다시 돌려주어야 맞거늘

 늘 그렇지가 않으니까 문제다. 오히려 사랑만 받고 돌아서거나 그런 상황을 철저히 이용한 적이 많았다.

 순진하고 셈이 능하지 못한 컨셉팅을 내세우며 등처먹은 거다.

 애초에 사람들에게 정을 쉽게 주지 않고, 믿지 않았음 역시 깨달았다.

 나는 타인의 사회화된 행동 속에서 내가 경멸하던 경험을 투사하여 그 사람을 섣불리 판단하고 혐오한다.

 때문에 그를 온전히 알기도 전에 그는 나와 적이 되고 만다. 나는 그에게 가장 차가운 태도를 보여준다.

 

 진짜 문제는, 나와 깊은 관계에 있는 친구들에서 발생한다.

 나는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내가 그들에게 느끼는 사랑, 그리고 그들과 내가 공유하는 사랑이

 결코 영속적이지 않음을 깨달았다. (이제야? 하고 냉소해도 좋다)

 이 충격은 방어 준비를 하고 관계에 임하던 위의 경우와 격이 다른 내파를 불러 일으켰으므로

 나는 더더욱 정나미 떨어지는 인간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 의지하며

 그 사랑을 위해 살아가는 삶은 근본적인 삶의 동력임과 동시에 (적어도 내게 있어) 형벌이다.

 그것은 내게 끊임없이 무시무시한 자각을 준다. 날로 먹지 말 것을. 노력할 것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노력하는 게 당연하단 것을.

 이 노력과 피로가 싫다면, 텔레비전을 껴안고 아파트 아래로 뛰어내리는 게 좋을 것이다.

 오늘 들은 얘기인데, 투신 자살을 할 때 무언가를 안고 뛰어내리면 사망율이 급격히 상승한다고 한다.

 끔찍한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