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ur girl's diary

하이재킹

또복 2015. 6. 6. 23:24

 

 자연이 기능적 사물로 외떨어진 모더니즘 이후로 직관의 세계는 빠르게 상징체계로 이동한다.

 독보적인 경험과 보편적인 역사와 특수한 고통은 빠르게 소멸한다. 남은 것은 상징과 기호,

 우리의 태도는 단 하나뿐이다. 무관심! 그것 외에 가능한 것은 없다. 현대의 비극은 여기에 있다.

 

 변화를 향한 모든 열망이 좌절되는 것은 저질 방법론도, 사회의 엄중함 탓도 아니다.

 그것은 모든 행위와 사건을 기호화시키는 상징체계에의 미끄러짐 때문이다.

 안에서부터의 폭발, 내파, 함열이라 할 만한 이 미끄러짐이 가능한 것은 상징체계의 견고함과

 상징체계에 익숙한 우리들의 단단한 지지와 공모 덕분이다. (영화와 삶의 관계를 떠올려보라)

 

 때문에 선과 악, 좌파와 우파의 경계는 이 함열 안에서 언제나 어긋난다.

 "악마화는 성공한 적이 없다" : 일베가 악마화가 될수록 사회의 정신위생은 보장되고,

 우리 내부의 일베는 은폐되고 암묵적인 승인을 이룬다. 투명한 악은 결국 사회 전체로 스며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능한 것은 두 가지 정도다.

 하나는 극단적이고 독보적인 사건을 창출해나가는 것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글쓰기와 대화에서 비롯된다.

 어디에도 가담되지 않은 나의 역사를 비로소 설명할 수 있을 때, 모두의 역사가 그렇게 발화될 때

 세상은 비로소 변하기 시작할 것이란 예언은 상징체계를 압도하는 독보성으로 실행될 것이다.

 다른 또 하나는 상징 교환 과정에서의 하이재킹, 공중 납치다.

 세계는 상징이 되었고, 우리는 상품을 구입하고 사물을 인식하고 세계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상징을 교환하여 각 상징에 내포된 의미를 조합하며 각자의 진실을 짜맞추는 것이다 : 

 이 상징체계, 매트릭스라 할 만한 세계에 동기화가 잘 될수록 세계와 상징, 상징과 상징으로 이동하는 반응 속도는

 점차 빨라지고, 이런 학습의 반복은 뉴런 연합체의 단단한 구성, 그야말로 새로운 인간 유형으로의 진화라 할 만한,

 새로운 감각을 만들어낸다. 상징 교환에 익숙한 세계에서 실재는 단지 상징의 샘플, 근거로만 존재할 뿐이다.

 하이재킹은 이러한 교환 과정에서 사유자를 어디론가 납치해버린다. 예정된 이행로에서 엉뚱한 상징으로 빠지는 것이다.

 불현듯 끼어든 망상 내지는 자꾸 떠나지 않는 정신적 얼룩. 이것은 정신분석학에서 편집증이나 내사로 설명되고 있지만

 내적 일관성으로 꽉 들어찬 상징체계의 균질성에 균열을 주고 탈주의 가능성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하이재킹이 성공되면, 우리는 뒤도 돌아보지 말고, 말해서도 안 된다.

 어디도 없을 그곳에 무사히 발이 닿는다면, 그 아름다움은 엽서로도 설명해선 안 되고, 과거를 말해서도 안 된다.

  

Come and Play in the Milky Night, Stereolab

 

지난 3일간의 스테레오랍 메모리얼 대축제를 찾아주신 모든 분께 감사 말씀 드립니다.

덕분에 가망성 없는 우리 역사를 가정할 수 있었고,

가능성으로 존재할, 저는 동참할 수 없는 그 세계에서 우리는 아름다울 겁니다.

그리고 나는 지옥을 살아왔다고 말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