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경삼림 한 순간

2015. 5. 15. 23:02 from blur girl's diary

 

 나는 매일 16시부터 체력단련실에서 한 시간 가량씩 운동을 한다.

 작년 여름부터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빼먹지 않고 하는 편이다.

 가끔 나는 내가 갖고 있는 음반을 틀기도 하는데, 요즘 아이돌에 편중된 아이들의 선곡 취향과

 심각한 괴리가 있어 조금 민망하기도 하다. 레드벨벳이니 미쓰에이만 듣다가

 갑자기 테디 윌슨의 피아노 연주곡이나 해피 먼데이스를 틀면 분위기가 참 묘하다.

 

 오늘은 체력단련실에 사람이 없었고, 나는 기쁜 마음으로 "와일드 지미 스프루일"의 비공개 음원 모음집을 틀었다.

 그는 50~60년대 활동하던 기타리스트로, R&B라고 앨범에는 장르가 규정되어 있긴 하지만

 재즈 전성기의 스윙 리듬이 강하게 묻어 있는 블루스에 가깝다.

 (대만 시골 클럽에서 포마드 바른 아이들이 아직도 부르고 있을 법한 그런 음악이다)

 

 그런데 30분 정도가 지나자 다른 아이들이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품에 "위너스"의 앨범을 끼고는)

 나는 "고참"답게 묵묵히 (50년대 R&B를 들으며) 삼두근 자극을 계속했고,

 그렇게 "95년생"들과 (50년대 R&B를 들으며) 함께 운동을 했다.

 

 그러다 한 아이가 갑자기 체력단련실 가운데에서 혼자 춤(같은 동작)을 추기 시작했다.

 마치 어여쁜 여자 아이를 끌어안고 있듯이, 허공에 손을 뻗고 빙글빙글 도는 것이었다.

 나는 그 광경을, 그야말로 얼이 빠져,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윽고 그와 눈이 마주쳤다.

 그러더니 그는 씨익 웃으며 내게 말했다. "이런 음악 아닙니까?"

 

 그것은 정말 중경삼림 한 순간이었다.

 (중경삼림 한 순간 : 영화 후반부, 정전이 된 스낵 바 씬을 다시 보시오)

 

Posted by 또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