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경야독 4

2016. 6. 20. 23:43 from blur girl's diary

 

 

드디어 수확을 시작하였다.

상추를 시작으로, 오늘은 제법 자란 오이 두 개도 냉큼 따왔다. 지난주에 비가 몇 차례가 오고 나니 작물들이 부쩍 자랐다.

상추는 두어 번 수확을 하여 할아버지도 드리고, 삼겹살을 구울 때에도 유용하게 쓴 바 있다. 내년에는 상추뿐만 아니라

쌈싸먹기 좋은 이것저것의 것들을 여러 종류 심어봐야겠다. 무엇보다 잘 자라고, 또 부담이 없다. 최고.

상추를 심은 텃밭은 아주 조그맣지만 한 차례 솎아주면 커다란 비닐봉지가 가득 찬다. 두 집은 나눠먹을 수 있을 정도.

내일 상정이 형과 정빈이를 만나는데, 주려고 미리 따두었다. 오이는 어머니에게 팩을 하라고 드렸으나 냉국이 될 운명.

 

 

비가 오고 나면 확실히 쑥쑥 자란다. 비실비실하여 내게 걱정을 주던 고추들도 어느덧 늘름하게 열매를 맺었다.

물론 주변으로 잡초도 맹렬하게 퍼진다. 그 질긴 생명력. 손으로 솎아주다 나중에 호미로 갈아엎고자 포기했다.

 

 

한 차례 약탈이 끝난 뒤의 상추밭. 위에서 왼편 세 덩이는 혹시 몰라 남겨두었다.

상추는 밑단의 잎부터 따줘야 하며, 맨위의 자라나는 잎은 남겨둬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모르고 홀랑 따버리면 다시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지금까지 세 번 수확했는데,

대가 손가락 높이 정도로 솟아나고 있었다. 나중에는 허리 높이까지 치솟을 걸 안다.

꽃이 필 정도면 씨를 털고 내년을 기약하는 것이다.

 

 

가지도 이만큼 자랐다!

어쩐지 지지대를 꽂아줘야 할 것 같아서 꼬챙이를 설치했는데, 아직까진 묶어줄 필요를 못 느낀다.

키가 크고 열매가 무거우면 바람에도 대가 부러질 수도 있으나 지금으로선 안전한 수준.

 

 

조그맣게 맺은 아기 가지가 너무도 귀엽지 않은가?

 

 

문제의 3구역. 몇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듭하여 방울 토마토에는 장대를, 오이에도 꼬챙이 두 개를 엮어 만든

기다란 지지대를 설치해주었다. 그런데 점점 통제 불능의 쥬라기 공원처럼 흉물스러워지고 있다.

방울 토마토는 뭔가 왕성히 자라고 있는 것 같긴 한데, 가지들이 뻗은 것에 비해 열매가 아주 막 열리진 않아

이게 잘 크고 있는 건가 싶다. 열매도 맺은진 꽤 오래 됐는데 익을 생각을 안 한다. 불안...

 

 

오이도 걱정인 것이, 비가 오고 나서 쑥쑥 자랄 것으로 기대했으나 노랗게 타버리고 마른 잎들이 속출.

아침에 가위로 잘라주었다. 무슨 일일까.

노란 꽃이 피면 그 위로 오이 열매가 자라기 시작한다. 처음엔 무슨 피규어 장난감처럼 미니한 오이로 시작.

그러다 푹푹 자란다. 어느 틈에 그렇게 커지는데 옆에서 한번 지켜보고 싶을 정도다.

아, 그리고 오이를 만져보고 놀랐는데, 표면에 돌기처럼 붙어 있는 검은 깨 같은 것이 몹시 까끌까끌하다.

거의 가시 방망이 수준. 그것도 모르고 손에 쥐었다간 아이언 메이든에 들어간 포로 신세가 될 판이다.

시판되는 오이에선 전혀 볼 수 없었던 모습인지라 신기했다.

 

 

작지만 행복한 우리 텃밭.

뭔가 계속 신경을 써줘야 하는데 귀찮을 때도 많드아.

 

 

이 글의 제목이 <주경야독>인데, 대체 공부는 언제 하는지 궁금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럼 밤에 책 읽는 모습도 찍어서 올려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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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3

2016. 6. 4. 10:27 from blur girl's diary

 

비가 통 내리지 않는, 가공할 만한 이른 혹한의 초여름이지만

그럼에도 작물들은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의 사랑스러운 텃밭에서.

 

 

이번주 가장 괄목할 만한 특징이라면, 오이와 토마토를 심은 제3구역에

넝쿨화 되어가고 있는 모종이 의지할 만한 대를 설치한 것.

처음엔 그냥 꼬챙이를 꽂아놓으려고 한 게 전부였으나 어머니의 제안은 달랐다.

어머니의 말대로 주변의 다른 텃밭들을 살펴보니, 대를 삼각형 모양이라든가 매트리스 뼈대처럼

그물을 엮어 놓는다거나, 입체적으로 설치했음을 알 수 있었다.

넝쿨이 보다 수월하게, 그리고 진취적으로 자랄 수 있게끔 배려한 설치 같았다.

이에 느낀 바 있어 곧장 따라해 보았다.

 

 

대를 삼각형 틀로 설치하는 것까진 어렵지 않았는데 문제는 역시 그물 엮는 것이었다.

비닐 끈 대신 집에 굴러다니는 천 쪼가리 재질의 끈을 이용해서인지 팽팽하게 묶이지 않고

후질근하고 맥아리 없이 흘러내리는 느낌. 나중엔 나도 자포자기하여 설렁설렁 하다보니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한심한 몰골이 되었다. 나중에 다른 텃밭의 설치물을 살펴보니

아예 완제품으로 나온 듯한 그물을 매달아놓은 듯했다. 그게 아니라면 거의 인간 거미 수준의 공작 능력으로...

 

 

무게가 점차 상당해져 바닥으로 구르고 있던 오이도 (일단) 그물에 걸터두었다.

오이나 나나 눈물겹다. 그런데 이 녀석의 끈기랄까, 햇빛에 대한 열렬한 갈망은 굉장하여

꼬챙이만 꽂아두었을 때에도 덩쿨이 빙글빙글 하늘을 향해 오르고 있었다.

그 힘을 발휘하여 저 흉물스러운 그물에 주렁주렁 열매를 맺기를...

 

 

그런데 슬픈 소식을 하나 발견. 오이 모종 하나가 왜인지 뚝 꺾여 있었다.

들고양이가 지나가다 밟은 것인지, 아무튼 큰 줄기가 으드득 꺾여 그 부분이 괴사하듯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다른 모종에 비해 자라지도 않고 잎사귀도 힘이 없었다.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열심히 물을 주고, 흙을 덮어주었으나 소생이 쉬울 것 같진 않다. 힘내라!

 

 

토마토는 아주 흔쾌히 자라고 있다. 호쾌하다.

텃밭을 구경하던 어머니가 즉흥적으로 나뭇가지를 박았는데, 그게 저 처참한 철골과 빨간 줄 사이에서

전원적인 향취를 자아내 제법 멋스럽다. 이런 식이다.

 

 

덤불 숲 사이에 들고양이가 앉아 있다.

몇 주 전부터 새끼 고양이 두 마리를 데리고 다닌다.

다 좋은데, 텃밭을 건들진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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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2

2016. 5. 31. 12:28 from blur girl's diary

 

 

텃밭의 작물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110년 만에 처음이라는 5월의 혹서 속에서도 말이다.

걱정 탓에 물을 자주 주려고 했으나, 그러면 가뭄에 약해진다며, 기후에 적응할 수 있도록

정말 가물 때나 보호가 필요한 어릴 때 조금씩 물을 줘야 한다고 아버지는 말했다.

텃밭에 모종을 옮기고 나서 두세 번 정도를 주었다. 그간 비가 오질 않아 걱정을 했는데,

다행스럽게도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 어제는 가족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고추 모종에는 흰 꽃이 피기도 하였다. 저로부터 고추가 자랄 것이다.

사실 모종 위로 검은 비닐을 덮어(이른바 '멀칭') 주변으로 자라나는 잡초의 궐기를 막았어야 했는데,

아버지가 '귀찮다'는 이유로 그냥 봉분을 만들어 심어버렸다. 아직은 준수하나 곧 있으면 피, 즉 잡초와의

전쟁이 예상된다. 엊그제 한번 호미와 장갑을 이용해 스멀스멀 올라오는 싹들을 뽑아 주었다.

괜히 모종을 건들까 걱정이 되었다. 고추나 오이, 토마토의 경우는 한없이 자라 올라오기 때문에

열매의 무게나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진다고 하였다. 그래서 곧 이를 지지할 대를 박고 끈으로 고정해야 한다.

오이의 경우는 덩쿨이 마구 휘감아 오르기에 두 개의 대 사이로 끈을 지그재그로 묶어줘야 한다고.

내일쯤 이 작업을 할 것 같다. 나팔꽃을 심어 가는 여름방학 숙제가 생각났다. 난 그런 거 한번도 안 해봤지만.

 

 

상추도 처음 심을 때에 비해 제법 풍성히 자라지 않았는가?

그런데 끄트머리의 잎들이 타들어가는듯 노랗고, 만져보니 바싹 말라 푸스스 부서지는 것이 걱정됐다.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가물어서? 아버지는 비료가 닿은 부분이라고 추정했다.

물을 몇 번 주니 그래도 회생하여 가운데에서 새로운 싹들이 올라오고 있다.

 

 

가지도 잘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가지는 본 적이 없어 어떤 식으로 열매가 생길지 모르겠다.

해본 것이라곤 스머프 빌리지의 에그플랜트 농사가 전부이니. 그래도 잎이 벌레 먹거나 타들어간 흔적은 없으니

다행이다. 올 여름은 슈퍼에 가서 가지 안 사도록 숨풍숨풍 나라!

 

 

문제의 오이 군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오이 자라듯'이란 표현이 있을 정도로 잘, 그리고 빨리 자란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덩쿨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고 있다. 어제는 제풀에 쓰러질 정도. 덩쿨을 만져보니 몹시 억세고

까끌까끌했다. 사진에 보이는 대에 고정을 해줘야 한다.

 

 

방울 토마토에 열매가 열린 것이 보이는가?

벌써, 벌써 열리다니. 나는 감동했다. 외할아버지는 오줌을 항상 모았다고 비료로 주었다고 하며,

얼마 전 읽은 아버지의 소설 <응달 너구리> 편에는 '뇡사꾼에게 똥은 밥이여' 하는 대사도 나왔다.

음, 나도 분료를 모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아버지는 창고에 비료가 있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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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경야독 1

2016. 5. 18. 01:32 from blur girl's diary

 

얼떨결에 농사를 하게 되었다. 집 앞 텃밭 일구는 정도지만.

이상할 정도로 나는 시원하게 수락했고, 그 즉시 종묘상에서 갖가지 모종들을 샀다.

아버지는 나를 '후계자'라 소개했고, 종묘상의 젊은 부부는 친절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 오라고도 했다. 나는 커다란 밀짚모자도 샀다.

앞으로의 기록은, 농사와 텃밭 가꾸기, 작물 재배, 그것들을 뭐라 말하든,

나 스스로에게 도움이 되고자 적는 일지에 가까울 것이다.

 

다음날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찍 일어나 일을 시작하자고 아버지는 말했지만

나는 평소와 같은 시간에 일어났다. 그것도 알람 소리가 아니라 나로선 납득할 수 없는 행정 문제,

요 며칠째 나를 괴롭히는, 관련한 전화가 나를 깨웠다. 꿈에서 나는, 존경하는 선생님이 지도하는

세미나에 대해 회의하는 모습과 전화 부스처럼 생긴 텔레포트 장치에서 순간이동에 성공하는 순간을 보았다.

 

작업할 때마다 입는 미 공군 점프 슈트와 어제 산 커다란 밀짚모자와 함께 텃밭 이동.

"쑥쑥 비료"인가, 동물 분료로 만들었다는 비료 세 포대를 짐차로 옮겼다. 바퀴가 한 짝뿐인 거라

균형 잡기가 어려웠다. 그 사이 아버지가 나왔고, 노회한 농부처럼 내게 지도를 해주셨다.

 

 

우리는 밭을 세 구역으로 나눴다. (야생 취나물이 제멋대로 자라고 있는 '방치 존'까지 헤아리면 네 구역)

아버지의 말에 따라, 우선 표면이 바싹 마르고 잡초가 피어난 밭의 땅을 가볍게 뒤엎었다.

삽을 찔러넣었을 때 생각만큼 흙의 저항이 강하지 않았다. 텃밭 말고 '메인 밭'의 경우는 사막처럼 건조하고

돌이 많아 호미질조차 어려운데 말이다. 또 이곳에는 돌조차 많지 않았다. 아버지가 말하길,

농사를 오랫동안 거듭한 땅엔 돌이 없고 흙이 마치 '콩가루'처럼 포슬포슬 날린다고 했다.

이 텃밭 같은 경우도 몇 해 동안 고추니 상추 따위를 키운 곳이다. 그곳을 이제 내가 맡은 것이다.

 

을 다 엎은 다음 "쑥숙 비료" 개봉. 포대를 눕힌 다음 삽으로 십자로 찔러 배를 갈랐다.

비료는 젖은 재처럼 시커멓고 기름기가 흘렀다. 생각만큼 나쁜 냄새는 나질 않았다. 제법 신기하기도 했다.

비료를 삽으로 퍼서 뒤엎은 땅에 골고루 뿌렸다. 그리고 쇠스랑으로 비료와 흙을 섞어주었다.

(아버지 표현을 빌리면, '잘 얼버무린')

 

 

야생 취나물이 쥬라기 공원의 랩터처럼 자유분방하게 자라도록 냅두는 방치 존을 제외하고,

제1구역은 청양고추를 심었다. 일정한 간격으로 흙을 모래성 쌓듯이 모은 다음 가운데 손가락으로 구멍을 뚫고,

그 안에 물을 부었다. 그리고 모종을 깊숙이 찔러넣고, 흙으로 다시 잘 덮으면 끝. 단단하게, 튼튼히 '봉분'을

모아주는 게 관건이라고 한다. 이를 약하게 심으면 바람 강할 때 고추대가 날아갈 수도 있다고.

젖은 흙이 장갑에 마구 들러붙어 맨손으로 해보았다. 축축한 흙의 감촉. 이렇게 흙을 만져본 것도 참 오랜만.

하지만 비료가 피부에 닿으면 좋지 않다는 말에 당장 손을 씻고 장갑 재착용. 제1구역은 그렇게 마무리.

 

 

제2구역은 (덜 매운) 고추와 상추다. 내가 1구역에 있을 동안 아버지가 상추를 다 심었다.

방식은 아마 비슷할 거라 생각된다. 상추 모종이 굉장히 많았는데, 내가 산 건 꽃상추(라고 아줌마가 말했)다.

아, 그리고 고추를 심을 땐 흙은 30센티 정도 높이로 높게 올린 다음 검은 비닐로 그 위를 덮어('멀칭'?)

지지대를 박고 등등의 작업을 해야 했는데, 아버지는 그냥 심었다. 귀찮아서, 라고.

사실 나는 인위적인 모든 것들이 깨림칙한데, 그 중 검은 비닐이 대표적이다. 메인 밭에 농약 치자는 것도

내가 싫다고, 자청해서 잡초를 뽑고 있다. 아무튼, 가능하면 인간의 꾀를 최소화하고 싶다.

나의 개똥 철학이 얼마나 더 오래 갈 진 모르겠지만, 고집을 부릴 수 있을 만큼 부려보자.

인간이 싫다. 하루종일 말없이 흙을 만지고 싶다.  

 

 

라고 말했지만 제3구역은 비닐 멀칭을 했다. 이유는? 모른다. 아버지 마음이었다. 나는 그냥 하라면 했다.

제3구역은 두 파트로 나눠 한쪽엔 가지를, 한쪽엔 오이와 방울 토마토를 심었다.

오이 같은 경우, 다른 작물과는 다르게 비닐 정중앙이 아니라 좌우 양옆으로 심는 것이라고 한다.

이유는? 모른다. 아버지가 농법 기술서도 아니고, 체계적인 건 내 스스로 공부해야 할 듯하다.

토마토, 가지. 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무럭무럭 자라다오. 친구들에게도 줄 만큼 많이 열려다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커다란 (죽은) 소나무가 떡하니 있어 온종일 그늘 진 곳이었는데,

최근 면사무소에 요청해 잘랐다. 덕분에 조금 볕이 들어온다. 전엔 잘 보이지 않던 아카시아 나무도

멋스럽게 보인다. 아카시아를 좋아하던 외할아버지가 오래 전 심은 것이라고 한다.

텃밭 뒤의 돌들도 왠지 일하다 쉬어야 할 것처럼 생겼다. 모기만 없으면 좋겠다.

 

 

 

이대로 일이 끝났으면 뭐, 아름답고 건강한 삶이었을 텐데 메인 밭(아버지 담당)을 도와야 했다.

메인 밭은 공사장 흙을 받아 돌과 자갈이 잔똑이고, 뙤약볕이 온종일인지라 아주 혹독한 환경이다.

나는 한 달 정도 이곳의 잡초를 다스리려고 했으나 괭이마저 박히질 않는 땅에 점점 지쳐가던 터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해야 할 일이었다. 모이지 않는 흙을 어렵게 개간하며, 고추 심을 준비를 다시 했다.

비료를 뿌리고, 비닐 멀칭을 하고, 물을 주고, 모종을 심고, 흙을 덮고.

하던 중 아침 식사를 하라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잠시 귀가. 오랜만에 아침 식사를 달게 먹었다.

 

할 일이 많은 하루였으므로, 식사 후 바로 밭을 일궜다. 처음이라 그런지, 온몸이 박살 나는 것만 같았다.

지난 주말부터 이상하게 몸이 삐그덕거리는 것만 같다. 금요일 운동과 주말 알바의 피로가 풀리질 않는다.

어머니가 타준 발포 비타민 음료에 의지하여 비틀비틀, 고추 모종 작업을 완수했다.

끝나고 방에 돌아온 시간은 1시 40분이었나. 오전 중에 끝내려고 했지만 생각보다 할 게 많았다.

윤해동의 책을 읽는데, 가끔 꾸벅꾸벅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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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데이빗 보위를 좋아했다. 그건 적어도 우리에게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함께 음악을 하는 밴드 멤버 넷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이 데이빗 보위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우리는 많은 음악을 함께 들었고, 서로 삶의 궤적마다 기대온 음악들을 선물 교환하듯이 나눴는데 신기하게도 모두가 동시에 수긍하는 뮤지션이나 밴드는 찾기가 어려웠다. 설마 이 사람을 싫어하겠어? 하는 유명 스타도 청개구리처럼 한 사람은 꼭 싫어했고, 겨우 셋이 열렬히 좋아하는 밴드를 찾아도 나머지 한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우리는 오기를 갖고 탐색을 거듭했고, 그 결과가 바로 데이빗 보위였다. 그때 우린 너무 기뻐 밤늦도록 <스타 맨>을 부르며, 후렴구의 멜로디가 비슷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동시에 부르면서 막 춤을 췄다.

 

공연 준비로 정신이 없어지던 시간 전에, 우리는 우연히 제주도에서 합숙하며 연습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정말 들떴다. 달력을 들먹이며, 저가 항공사의 사이트를 몇 번이나 뒤적이며 항공편을 알아보았다.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 것은 합숙보다 비행기 이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이 망할 서울을 떠나다니. 그것은 그 순간 영원히 끝나야 할 꿈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멤버의 일정 문제로 제주도 합숙은 없던 얘기가 되었다. 그 역시 대학 졸업식엔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든 노래의 제목은 <데이빗 보위는 위대하다>이다. 꿈만 같아 모든 시간이 가만히 손을 얹은 채… 하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였는데, 개인적으로 도입부를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뒷부분은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노래는 합주하지도, 발표되지도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어째선지 라디오에서 카펜터즈의 노래가 연이어 나왔다. 카펜터즈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밴드 멤버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그 다정하면서 엄격한 목소리가. 또 다른 지인은 오늘 데이빗 보위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고, 나는 우리가 다함께 좋아하던 데이빗 보위가 지구를 떠나 스타맨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또 한번 나의 잃어버린 밴드를 떠올렸다. 밤운전을 하면서도 나는 종종 그들을 떠올리면서 혼자 낄낄거리고, 소리내어 웃고, 사무친 다음 조용히 미소짓는다. 나를 진실로 웃게 하는 건 그들이고, 그 사실에 나는 이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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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또복 :

 

지금은 사라진, 외대 수정포차에서 영조 형과 술을 마시면서, 정확히는 그로부터 김수박의 <아날로그 맨>을 소개받은 이후부터 시작되었다. 나만의 <올해의 작품> 수상작. 그냥 한 해 동안 감상한 작품 가운데 가장 긴 여운을 남기고 나의 삶에 스며든 것을 한 작품 선정하는 것. 그렇게 시작된 2010년의 <올해의 작품>은 당연히 <아날로그 맨>. 어딘가 안착하지 못하고 정신적으로 방황하는 모든 이들의 히어로상을 제공한 이 작품은 졸업할 때까지 라면 먹으면서 같이 보았다. 만화 속 주인공 헐랭이와 함께 산 느낌.

 

그 다음해인 2011년의 <올해의 작품>은 토요다 토시아키가 연출하고 마츠다 류헤이가 나온 영화 <우울한 청춘>. 이 영화를 접한 건 정말 우연이었는데 횡재한 기분이었다. 토요다 토시아키의 다른 영화도 찾아보고, 마츠모토 타이요가 그린 원작 단편도 읽어 보았는데, 다른 이유로 모두 좋았다. 하지만 마츠다 류헤이는 정말 최고다. 어젯밤엔 <행복한 사전>을 보았는데, 마츠다 류헤이가 꽤 괜찮은 일본 남자 배우를 넘어 세계적인 수준의 연기를 구사하는 경지에 이르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2년의 <올해의 작품>은 생각나질 않았다. 정서적으로 되게 부침이 많은 해였다… 하지만 난 연말마다 수상작을 꼭 꼽았으므로 아주 없진 않을 것이다. 추측컨대 마이클 윈터바텀의 <24 아워 파티피플>이나 우에야마 토치의 <아빠는 요리사>일 수도 있겠다. 둘 다 주구장창 보았으니까. 롤러코스터를 타고 천당까지 올라갔다가 레일이 사라져 그대로 곤두박질한 해였다.

 

2013년 가을부터 입대를 했으므로 제대한 2015년까지 <청색 시대>로 뭉뚱그리자면, 놀랍게도 이 기간에도 <올해의 작품>이 있다. 사실 <청색 시대>에 나는 다시 대학 생활을 (제대로) 시작한 것처럼 많은 영화와 책을 볼 수 있었다. 새벽 늦게 당직을 서다 혼자 오손 웰즈의 <악인의 손길>을 보고 난 이후의 쾌감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긴 겨울을 함께 한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은 할아버지의 마법 같았다. 그러나 난 아주 개인적인 이유로 영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을 꼽을 수밖에 없겠다. 당직 교대를 하고 혼자 생활관 침대에서 이 영화를 보고 마지막엔 급기야 이불을 뒤집어 쓰고 울었다. 아프게 연애를 끝맺음한 사람 가운데 눈물 흘리지 아니할 사람 있을까. 다만 영화에 흠이 있다면 로버트 줄리아와 카메론 디아즈가 좋아하는 한 남자, 그 배우가 정말 멋대가리 없다는 거다. 매력이 없다. 왜 두 여자가 그렇게 매달리는지 이해가 안 갈 정도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가 아니니까…

 

아무튼 2015년 마지막 날, 어김없이 찾아온 <올해의 작품> 발표 시간. 최초로 공동 수상을 해야겠다. 바로 이소라와 영화 <카사블랑카>. 축하드립니다. 박수로 힘차게 주인공들을 맞이해줍시다.

 

이소라는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다. 군 생활서부터 이날 이때까지 엉망진창인 나를 어떻게든 일으켜세운 단 한 사람이다. 특히 제대 이후, 방황하는 내 곁을 떠나주지 않았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든 나를 떠나가는 상황에서도 유일하게 끝까지 남아주었다. 나 역시 그녀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밤새 술을 마실 때에도, 광주의 단란주점에서 혼자 노래를 부를 때에도, 면허 시험을 볼 때도, 국도를 타고 강원도를 갈 때도, 광주-송정 KTX 기차에서도, 나의 꿈속까지 따라와 절망적인 날 어루만져 주었다. 그녀에게 감사한다. 내년에는 좀 더 내 자신이 어른스럽게 그녀를 대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칭얼거리기만 했으므로. 신의 손길이 앞으로도 그녀를 지켜주길 바란다. (쓰고 보니까 너무 끈적끈적한 짝사랑 티를 내 조금 무서울 정도다. 우려하지 마세요!)

 

다음은 <카사블랑카>. 사실 제대 이후에 어째선지 험프리 보가트 영화를 섭렵하기 시작했다. 소설을 쓰는 내내 집에 혼자 있다 보니 조금 안 풀린다 싶으면 인터넷 티비에 한가득 있는 험프리 보가트 영화를 주파했다. 험프리 보가트가 출연한 영화 몇 편 빼고는 죄다 봤을 것이다. 장 뽈 벨몽도의 우상이기도 한 그는 필름 느와르의 대명사처럼 한정된 역할로 인식되기 쉬운데 사실 다양한 군의 연기를 펼쳤다. 그 가운데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하워드 혹스의 <빅 슬립>에서 매력적인 마초 탐정, 빌리 와일더의 <사브리나>에서 고지식한 사업가, <키 라고>와 <아프리카의 여왕>에서 '첫 사랑이 배'라던 선원, <케인 호의 반란>에서 딱한 함장, <하이 시에라>에서 인정과 카리스마 둘 다 겸비한 악당, <필사의 도망자>에서의 야비하고 집요한 악당… 끝이 없을 것이다. 그 가운데 내가 <카사블랑카>를 최고로 꼽는 이유는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사적인 이유다. 그리고 그 이유는 비밀이다. 정 알고 싶다면 헤네시나 와일드 터키를 사들고 나를 찾아오라.

 

사실 <카사블랑카>는 애국주의 감성을 팍팍 자극하는 판타지 영화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치명적인 매력을 겸비하고 있다. 일단 험프리 보가트가 분한 "릭"은 가히 최고의 로맨티스트 아닐까. 그토록 시니컬하고 합리적이며 이익셈법에 충실한 미국인이지만 결국 사랑이란 허울과 망상에 모든 걸 희생하는, 남자들이 상상하는 최고의 판타지! 여기에 히로인인 잉그리드 버그만. 너무 예쁘다. 정말 너무, 너무 예쁘다. 날 아는 사람이라면 알 터인데, 내가 특히 어떤 여배우나 여가수의 '외모'를 품평하거나 논하는 것 자체를 본 적이 드물 것이다. 하지만 잉그리드 버그만은 완벽하다. 심지어 오드리 헵번에 비교해도 그렇다. 뭐, 주관적인 이유겠지만서도 오드리 헵번이 화려하고 인위적인 매력으로 무장한 배우라면 잉그리드 버그만은 시대적인 수수함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순도의 완벽성, 완결성을 자랑한다. 아무 것도 꾸미지 않았는데 그걸로 된 것이다. 아무튼 <카사블랑카>의 뿌연 밤안개 속에서 험프리 보가트와 잉그리드 버그만이 헤어지는 마지막 장면은 이제는 재현할 수도, 찍을 수도 없는 영화적 장면.

 

이렇게 올해도, <올해의 작품>도 지나갔다. 비록 수상하진 못했지만 2015년, 나와 함께 해준 은인들을 소개하면 토우메 케이와 카와치 하루카를 빼먹으면 안 될 것이다. 토우메 케이의 <메모리즈>는 요즘 유행처럼 번진 인문학 열풍에 힘입어 다시금 열독하기를 강권하는 작품. 특히 바슐라르의 이론이나 장소성, 벤야민의 아우라 등등의 개념들과 함께 읽으면 참 좋은, 토우메 케이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건축 전공자들은 필독할 것. <예스터데이를 노래하며> 역시 너무 소중한 연재작. 그런데 어쩐 일인지 학산에서 10권 이후부터 발매를 안 하고 있는데 마음 같아선 이후 원작들을 내가 번역하여 읽고 싶은 마음이다. 일본 가게 되면 사야겠다. 아무튼 만화를 막 보는 나조차 이 작품은 행여 질릴까봐 아주 아끼면서 보고 있다. <모모네>는 정말 맑고 기분 좋은 작품이고, <모르모트의 시간> 역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수작.

 

토우메 케이와 비슷하면서도 상이한 감수성을 지닌 카와치 하루카의 만화 역시 훌륭하다. 나는 개인적으로 <짝사랑 진공팩> 단편집을 여러분께 권하고 싶다. 카와치 하루카의 진면목이 압축되어 있다. 그녀의 만화는 역시나 혼잣말 대사 표현이 훌륭하다. 정제된 혼잣말과 컷 구성은 그 순간을 작품화시킨달까, 바다 풍경처럼 수수하게 압도되는 그런 게 있다. 최근 보기 시작한 <여름눈 랑데뷰>도 무척 인상적이다. 설정도 재미있고, 전개도 작가가 공들여 소중하게 시키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아리송한 꽃>에서 정말 아리송해진 독자라면 <여름눈 랑데뷰>로 안심해도 좋겠다. 물론 후시기나 하나 역시 카와치 하루카적인 센스로 뒤범벅이 된 "성인물"이고 나름 인상적이지만 어떤 깊이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여름눈 랑데뷰>, 일본어로 풀면 눈(目)은 "메"로 발음하므로 "나츠메"인 줄 알았다. 다 알겠지만 나츠메하면 나츠메 소세키 아닌가? 근대 소설가 랑데뷰? 그런데 저 눈이 이 눈(雪)이었다. 고로 나츠메가 아니라 "나츠유키". 별 것 아닌데, 토우메 케이 역시 "토우(冬)+메(目)" 한자를 쓴다. 나츠메(여름눈)의 반대인 토우메(겨울눈)인 셈. 필명으로 알고 있는데 나츠메 소세키와 무슨 연관이 있을까? 그리고 "冬"은 "후유"로 읽는데 왜 음독을 썼을까.

 

아, 그리고 아주 우연한 계기로 멀리 상암동까지 찾아가 본 라브 디아즈의 8시간짜리 영화 <멜랑콜리아>도! 이 작품은 영화가 시작되기 전부터 두고두고 기억에 남으리란 걸 알 수 있었다. 비록 중간중간에 많이 졸았지만 그럼에도 걸작이었다. 특히 뒷부분 필리핀 정글 씨퀀스와 마지막 엔딩은 최고다. 영화학도들, 특히 대안적인 영화를 모색하는 사람들은 필히 봄 직하다.  영화는 역시 길어야 한다는 내 지론을 확인한 것 같아 혼자 뿌듯.

 

이 외에도 거론치 못한 작품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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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내가 한겨레 독자로서 신문을 다시 읽게 되었다는 소식부터 전해야겠다. 이 감격적이고도 거대한 낙관으로의 한 걸음 도약을 다시없이 기쁘게 전하고 싶지만, 사실 재회는 썩 유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모두가 상상하는, 아침에 하품을 하며 일어나 현관문을 열면 그 앞에 신문이 탁 놓여 있고, 그것을 집어 툭툭 털며 집으로 들어와 커피와 함께 헤드라인을 살피는 그런 구독이 아니기 때문에. 첩첩산중 산악 지형 덕분에 신문 배달원이 집까지 못 온다는 사실은 전에도 밝힌 바, 타협책으로 내가 노상 가는 주민센터에서 찾아가기로 했는데 신문을 맡아준다는 안내 아저씨가 문을 걸어잠근 채 퇴근한 것이 아닌가. 월요일을 상쾌하게 한겨레와 함께 시작하고 싶었던 나는 잠긴 안내실을 부수고서라도 신문을 읽어야겠다는 투지 아래 모든 직원들을 호출하는 등의 수선을 피웠다. 더군다나 점심 식사까지 끼는 바람에 나는 30분 넘게 주민센터 복도에서 기다려야 했다. 아저씨에게 "기름칠"로 드릴 홍삼 음료수가 정말 나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눈이 많이 내린 어제였다. 한 시 넘게 어정어정 걸어오는 직원을 보고서, 미용실을 들렸다 불광동을 가려던 나의 계획은 강제로 수정되었다. 어찌 되었건 신문을 손에 넣는 데에는 성공. 정말 눈물겨운 구독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귀하게 신문 읽는 독자의 마음을, 부디 한겨레가 알고 고군분투를 포기하지 않았음 한다. 종이 신문을 매일매일 읽는 것의 혁명성에 대해선 언젠가 진중히 논할 계획이다. 오늘날의 투쟁 방법론은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면서 뭔가를 바꾸려는 생각부터가 틀려먹은 것이다.

 

지순협의 학생이 되었다. 내년부터 불광동으로 수업을 나간다. 양정에서 전철을 타면 불광역까지 칼 같이 1시간 10분이 소요된다. 그러니까, 스탠 게츠의 1시간 18분짜리 히트 앨범을 들으면 8분 남기고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런데 아주 나를 흥분하게 하는 것은, 편도행 소요 시간과 신문을 읽는 시간이 일치한다는 것. 그것도 꼼꼼하게 모든 지면을 다 읽을 수 있다. 이건, 종이 신문을 꾸준히 읽는 독자라면 알겠지만 나름 기적 같은 일이다. 일단 종이 신문을 앉은 자리에서 독파하는 데에는 파편화된 포털 사이트 뉴스 토막을 읽는 것과 차원이 다른 공력과 시간이 들어간다. 관심 없는 기사를 패스해도 40분은 족히 걸린다. 생각해보라. 요즘 같이 바쁘고 가혹한 노동 처우 속에 사는 현대인들 가운데 이렇게 느긋하게 종이 신문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나. 나도 구독을 하면서 걱정을 하긴 했다. 타이트하게 구성된 요즘의 내 생활 속 어디에 신문 읽는 시간을 넣어야 할 것인가, 하는. 그런데 딱 해결된 이 후련함. 학교를 가는 동안 신문을 읽고, 다시 돌아오는 길엔 원하는 책과 음악을 들으면 된다. 최고! 그런데 전철에서 신문 읽는 스킬은 좀 더 숙련되어야 할 것 같다. 특히 앉아서 신문을 펼쳐 읽는 것은 드럼통 속에 들어가 아크로바트를 하는 기분이랄까, 뼈가 욱씬거린다. 한 시트에 한정된 면적 외에 침범하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는데, 나는 신문을 막 솜씨 좋게 접었다 폈다 하는 것도 서투르므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차라리 서서 보는 게 편하긴 한데 만원 전철이면 또 문제가 다르다. 주여, 지혜를 주소서.

 

한겨레 구독은 군 복무 시절부터 시작되었다. 나는 권한을 최대한 활용하여 사무실의 신문을 한겨레로 바꾸었고(마침 전역을 앞둔 장교는 별 상관하지 않았다), 사무실에 출근하여 커피를 내리고 책상에 펼친 신문을 읽는 상쾌함도 그때부터였다. 한겨레는 무척 성실하고 고민 많은 친구 같다. 확 튀거나 화려하진 않지만 존재 자체로 귀감이 되며, 또 귀를 기울일수록 영혼이 살찌는 기분이다. 그런데 내가 군 시절 겪은 문제는, 당시 세월호 유가족의 편지를 1면에 싣던(박재동 선생님의 캐리커처와 함께) 기획 덕분에 나는 정말 매일 같이 아침을 훌쩍거리면서 시작해야했다. 어떻게 그들의 안녕을 듣고도 시큰거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와는 별개로, 내가 군인이었단 사실도 별개로, 아침마다 우울하고 눈물이 핑 돌며 시작하는 것은 조금 곤란한 일이긴 했다. 그런데, 반 년만에 다시 재개한 한겨레를 읽으면서 나는 다시 울컥했다. 전철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은 도쿄 특파원 길윤형 씨(군대 있을 때부터 이분의 기사는 꼭꼭 스크랩하곤 했다)가 쓴 일본 야권 연대에 관한 기사였는데, 공산당까지 합세하여 아베의 폭주를 저지하고자 하는 일본의 끈질기고 두터운 투쟁 의지는 절망적인 한국인 이준하를 감동하게 했다. 여전히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고, 막연하고도 두둑한 안도가 느껴져서일까. 하지만 기본적으로 정서는 절망. 희망이 없다. 사회의 갑갑함을 아프게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신문 읽기란. 우는 한이 있어도 눈감지 않으리.

 

좀 다른 말인데, 나는 그리 탐욕적이진 않지만 내 것에 대한 분명함을 지키고자 하는 욕구는 다소 강하다. 그러니까, 뭔가를 더 가지려 하고, 많은 걸 원하는 건 아닌데 내가 애착을 갖는 사물과 영역에 대해 침범을 받는 것에 대해 강렬한 거부감을 느낀다. 군대에서도 그랬다. 많은 인원이 함께 생활하는 공간에서 내 것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움에도, 나는 어떻게든 내 자리를 만들고자 했다. 창고로 쓰이는 공간에 책상과 의자를 숨겨놓고 나만의 공부방을 만들거나 쟈가비 상자를 보석함처럼 꾸며 부활절 때 받은 계란을 일 년 넘게 보관하거나. 나는 재산이 별로 없지만 내가 아끼는 물건은 몇 개 있다. 예전엔 기타 이펙터가 그랬고, 요즘엔 생일날 산 나이키 에어맥스 신발 정도?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은 것들. 책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내가 이 말을 꺼낸 진짜 이유는, 돈 주고 산 물건 가운데서 정말 애정이 떨어지는 것이 유감스럽게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무라 히로아키의 단편집 <이사>. 얼마 전 홍대 툰크에서 산 것인데, 몇 장 보다 얼마나 후회가 들던지 아직도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너무 낙관적이었다. 이사, 라는 제목만 믿고 과소비했다. 생각해보면 <무한의 주인>도 썩 좋아하는 만화가 아니었는데, 바보. 누구에게 그냥 주고 싶을 정도다. 갖고 있는 게 싫다. 싫어하는 물건을 선물로 줄 수도 없고, 난감하군. 사무라 히로아키 팬이 주변에 있었으면 처분할 텐데. 유감.

 

살아오면서 나는 많은 곳에서 도망쳐왔다. 내 자신을 내던져야 하는 길목에선 어김없이 돌아섰고, 세상이 나를 부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데에 만족하고 그걸로 위안을 삼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 결과 나는 여전히 집에 있고, 나를 찾는 곳 역시 집뿐이다. 늘 최고의 선택을 하고자 한다. 최고의 선택의 순간이 오면, 모두가 생각한다, 그때는 내던져야지. 내 삶을 증명하고자 한다. 다만 그때가 오지 않았을 뿐이라며 몸을 사리고 어영부영의 결과 삶이 내 자신을 추수해간다. 삶이 나를 내 멋대로 요리한다. 그럼에도 나는 안심한다. 이렇게 내몰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살고 있지만 내 모자람 탓은 아니야. 나는 언제라도 할 수 있어. 나는 재능이 있지. 다만 그걸 사용하지 않았을 뿐이야. 행동하지 않았을 뿐이야. 오늘 주민센터 체육관에서 샤워를 하면서, 대체 무엇을 계속 두려워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나 비참한 케이스를 비교해가며, 내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해가며 조심조심 안전하게 살려고 하는가.

 

세상에 죄를 짓지 않는 윤리적인 노동을 하면서, 뜨겁게 공부하고, 평생 글을 쓰며 살고 싶다.

지혜와 용기와 체력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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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어디에서 시동이 걸렸더라.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를 번역하고 있는데, '나'와 '쥐'가 '뭔가에 홀린 듯' 맥주를 여름 내내 마셔대고 땅콩 껍질을 바닥에 5센티 가량 쌓이도록 내던지던 "제이스 바" 풍경은 다시 봐도 환상적이다. (원문으로 읽고 있으니 그 소회는 남다르다. 확실히, 좋아하는 해외 작품을 원문으로, 언어를 차곡차곡 배우는 심정으로 더듬는 작업이란 매력적이다. 안 되는 걸 되게 하려는 군인 정신이 좀 많이 필요하긴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얼마 전 홍대 툰크(난 계속 "통크"로 기억하고 있다)에서 산 츠지야마 시게루의 <방랑의 미식가>였다. (만화에 대해 잠깐 소개하면, 먹방 시대인 오늘날 모르면 간첩이라 할 만한 요리 만화의 고전 <고독한 미식가>의 원작자 구스미 마사유키가 이번엔 다니구치 지로 아닌 츠지야마 시게루와 작업을 한, 속편 격의 작품이다. <고독한 미식가>는 분명 훌륭한 작품이지만, 개인적으로 다니구치 지로 스타일의 '건실한' 그림체와 배알 뒤틀리게 하는 일본의 소시민적 행복을 구태여 보고 싶진 않았다. 그럼에도 내가 만화를 사게 된 이유는 오로지 츠지야마 스게루 때문이다. 그는 푸드 포르노로 전락하기 십상인 요리 장르를 하드보일드 블랙코미디로 뒤섞는 대단한 작가이다. 물론 이 방면의 가장 좋아하는 작가는 우에야마 토치지만!)

<방랑의 미식가>에서 가장 인상적인 에피스드는, 주인공이 지방 소도시에 출장을 왔다가 들린 작은 술집에 대한 이야기인데 요리와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여주인과 추파를 던지면서도 항상 출석하는 단골 손님(술에 취해 졸다가도 별안간 바닥에 엎드려 팔굽혀 펴기를 하는데, <강원도의 힘>에서 모텔 난간에 매달리며 자신의 멀쩡한 정신을 호소하던 남자가 떠올랐다), 단둘이 지키는 조그마한 가게다. 굴은 먹지 못하는 주인공은 미안한 마음에 연거푸 맛있다며 안주를 시키고, 투닥투닥이는 주인과 단골을 지켜보며 천천히 술에 취한다. 그리고 와하하, 크게 웃고는 사라진다. (영원히)

 

맞다. 이 만화였다. 동네에 자주, 편하게 들려서 혼자 술을 마실 수 있는 술집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한 것은. 내가 있는 동네는 나치 독일군에 맞서는 스위스 첩첩산중 마을처럼 산악 지형인데다가 구멍가게를 가고 싶어도 차로 10분, 자전거로 15분, 걸어서는 왕복 1시간 남짓이 걸리는 상상초월의 지역. 물론 차를 타고 15분 거리의 시내로 나가면 아파트 단지와 대형 텔레비전으로 야구 경기를 함께 보며 호프를 기울일 수 있는 광장형 술집과 세련된 이자까야 등등도 많지만 말했잖나, 내가 원하는 곳은 슬리퍼를 신고 훌훌 찾아가 고민을 내려놓고 군대 식의 생각 없는 대화를 일삼다 비척비척 집으로 돌아올 수 있는 동네 술집. 그런 곳을 위해 자동차 시동을 건다는 발상부터가 오류다. 잘못이다. 역시 시내가 아닌 (첩첩산중인) 우리 동네에서 찾아야 한다.

 

몇몇 후보군이 있다. 가령 최근 중학교 앞에 새로 생긴 일본 음식점. 지나가면서 흘끗 본 이곳은 처음부터 기상천외했다. 열한 시쯤, 가족과 한번 찾아간 적이 있는데 "클로즈" 팻말을 걸어놓은 가게 안쪽에선 군가처럼 다함께 부르는 노랫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동네의 노인들이 궐기한 것 같았다. 최초의 압도된 기억을 무마하여, 친구와 함께 2차 탐방. 내부는 평범한 식당이었다. 대학가에 있을 법한 푸드 코트 풍의 일식집. 메뉴도 돈부리나 우동 등등의 식사류와 오뎅탕, 오코노미야키 안주류 투 트랙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오뎅탕과 오코노미야키, 그리고 술 먼저 주세요, 호쾌하게 주문했다. 동네의 대안 학교 학생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계속 눈치를 보면서 우동을 먹었다. 몰래 술을 먹다 걸린 사람처럼. 안주가 나오기 전에 소주 2병을 비우는 술꾼이 하마터면 그들의 지도관이 될 뻔한 건 꿈에도 모를 것이다. 오뎅탕은 먹을 만했지만 다소 비쌌고, 오코노미야끼는 반죽부터 익힘까지 영 꽝이어서 몇 점 먹질 못했다. 이곳은 어쩌면 혼자 술을 마실 만한 곳이다. 안주가 좀 싸면 말이다. (츠지야마 시게루 선생의 만화에 나오는 술집은 그렇게 푸지게 안주를 먹고도 놀랄 정도로 싼 가격이었다) 그렇다고 식사와 술을 함께 하는 반주는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단 이곳은 보류.

 

그럼 성당 아래의 순댓국집? 오, 난 순대국이 싫다. 너무 배부르다. 밥을 말고, 국물까지 다 비우면 8킬로 정도 찐 것처럼 주체할 수 없는 포만감이 너무 불쾌하다. 밥 없이 건더기를 건져먹으면서 소주를 마실 수 있다. 친구와 속상한 일이 있을 때는 큰 위안이 되는 방법이지만 혼자 식당에서 그러고 있노라면 그렇게 추레할 수가 없다. 이곳의 순대국은 맛있는 편이다. (아마 동네에서 가장 신뢰 받는 식당일 것이다) 하지만 백색의 형광등은 내게 마이너스 포인트다. 난 형광등 불빛을 정말 싫어한다. 무엇보다 술집처럼 마음이 은거하고 심신을 놓아야 할 곳이 취조실처럼 번쩍번쩍 흰빛을 내리쬐고 있노라면, 그 안에 견디는 걸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입맛이 달아난다. 게다가 이곳은 오픈된 공간이다. 다른 손님으로부터 나를 숨길 아무런 가림막이 없다. 지금 이 녀석은 혼자 술 마시는 게 버릇 들린 술꾼입니다요! 하고 광고하는 꼴이다. 이곳도 보류.

 

에휴, 그럼 집에서 혼자 드세요, 라고 할 수밖에 없겠네.

그것도 좋지. 어서 연구실을 꾸미고 싶다. 어두운 거실엔 1인용 소파와 흔들의자가 있고, 노란 갓등과 티 테이블이, 그리고 전축과 파이프 담배가 있어야 할 것이다. 부엌 선반엔 반쯤 남은 위스키 병이 있고, 모든 일이 끝난 저녁에는 나는 거실에서 혼자 앉아 있다. 가끔 친구가 오면 소파에 마주보고 앉아 옛날 재즈를 들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정도 낭만을 꿈꿀 권리는 제게 있겠죠?

 

동네 술집 찾는 시시껄렁한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다. 남양주에서의 접촉에 대해 몇 가지 보고하고자 한다.

남양주 시민들은 가정의 컴퓨터에 이상이 있다면 평내의 주연테크를 찾아가세요. 네, 도미노 피자 옆에 있는 그곳. 어머니의 LG 올인원 컴퓨터 속도가 너무 느려 찾아갔는데 SDD 하드디스크를 업그레이드하여 제 속도를 찾았다. 그 후련함이란. 직원 분도 친절하다. 그거면 되지 않은가.

또 마석에서 커피 볶는 삼촌. <홍카페>라고도 하고 <커피 볶는 삼촌>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아는 시내 유일의 커피콩 취급점이다. 군 복무 당시 처음으로 핸드드립 커피를 접한 '코나'도 있고, 종류가 다양하게 준비되어 있다. 나는 이번에 '코케허니'를 샀는데, 요플레처럼 새콤달콤한 향이 환상적이다. 꽁지 머리를 묶은 삼촌이, 한석규처럼 부드럽게 웃으면서 커피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준다. 남양주는 커피 문화도 마땅찮은 곳이라고 혀를 차는 분들은 지금 당장 <커피 볶는 삼촌>을 찾아가시오. 그분이 당신을 구원하리니. 아무튼 이곳은 나의 보물 같은 곳이다!

 

어제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한겨레 신문사와 수동 지국에 전화를 걸어 담판을 지었다. 이제 곧 나도 "종이신문 독자"가 된다. 아, 이 감격이여. 하지만 아침마다 집앞에 신문이 놓인 풍경은 아직 요원하다. 신문 오토바이가 '첩첩산중'인 우리 집까진 도저히 올 수 없다는 것이다. 타협점으로 내가 늘 운동을 가는 주민센터와 오늘 쇼부를 보았다. 나와 영 사이가 좋지 않은(이라기보다 대화다운 대화 나눠본 적이 없는) 관리 아저씨는 안내실에서 손자와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나는 그를 '선생님'이라 불렀고, 신문을 맡아달라며 부탁했다. 그는 스스럼없이 그러마고 했고(오, 이제 항상 먼저 인사하고 박카스도 드리리라) 나의 한겨레 독자 라이프도 곧 시작된다! 하지만 저녁마다 투잡을 뛰는 우리 민노당 출신의 신문 배달원 아저씨가 연락이 없다. 내일 전화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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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저녁 연구소

2015. 12. 15. 23:03 from blur girl's diary

 

딱히 외로움 많이 타는 녀석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는데, 뭐랄까, 사회성을 막 시험하고 싶은 요즘이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타인과의 애착 관계에서 주고받는 애정의 원천이랄 수 있는 스트로크가 금연 중의 니코틴을 몸이 원하는 것처럼 지금의 내가 갈증 상태에 놓인 것? 그렇게 말해야 할까.

 

음, 서른을 목전에 두고 있는 나는 선악설이라거나 유토피아라거나 정치혁명으로 인한 대격변이라거나 이데올로기의 약속 등등에 영 회의적이다. 인간은 결코 한계를 초월할 수 없을 뿐더러 모든 시도는 결국 허망하게, 잔인하게도 그것 역시 예정되어 있었다, 물거품이 된다. 덧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희망적이다. 이건 좀 모순 같기도 한데, 실패하리란 걸 잘 알면서도 시도를 멈추지 않는 게 인간의 숙명이자 그럼에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 같다. 삶을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면 약간의 웃음거리가 주어지는데 보상에 비해 피해와 손상이 너무 크다. 오늘날의 셈법으로 계산하면 절망적일 만큼 각이 안 나오기 때문에 우울하지만 이윤 논리에서 벗어나면 나름대로 즐거운 것도 많은 게 삶이다.

 

관계에 대한 끝이 없는 갈망. 부재와 결핍을 통해 욕구가 선명해진다. 건강한 인간이라 함은 삶의 발견과 지각을 통해 욕구가 발생하면 이를 충족하기 위해 행동에 나서고 그것이 성공적이든 실패가 되었든 다음의 욕구를 위해 움직인다. 하지만 나는? 얼마 전에 본 영화에서도, 그리고 어쩐지 주변의 이야기들이 나에게 "너 미친 거 아냐? 왜 아직도 연애 안 해? 어디 이상한 거 아냐?" 하고 내모는 것만 같다. 허참, 서른 넘으면 정말 누가 뭐라 그러지 않아도 머리가 돌아버릴 것이다. 아무튼 연애라는, 더군다나 이 단어는 20대 후반의 남자가 먼저 얘기하면 상당히 구질구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관계 말고도 내가 원하는 관계의 양상은 많다. 동료들... 혹은, 정착 생활과 공동체의 일원들, 유대감. 그것은 어쩌면 평생 나를 괴롭히고 추동할 개인적 욕망(과 콤플렉스)의 근원. 동시에 구원이라 착각하거나 지옥에 빠트릴, 절대 성립되지 않을 신기루일 수도 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그런 근원적인 것이 당장 하고 싶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게 아니잖아? 앗, 아이스크림 먹고 싶다 → 편의점을 간다, 이런 게 아니니까. 나도 안다. 다 변명이란 걸.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야겠지. 처음부터. 회의와 갈망이 막 싸우다 어느 순간 행동이 비집고 나와 상황을 만들고, 후회와 환희의 일순이 계속 반복될 것 같다. 어휴, 지겨워.

 

봄 저녁 연구소란 걸 세울 생각이다. 구리-남양주 지역을 기점으로 꾸준하게 사회-문화를 탐구하는 독립 연구소이자 공동체랄까. 여기서의 봄 저녁은 공동체 안과 밖에서 발견하는 유대의 순간을 상징한다. 구리-남양주 지역의 젊은 식자들, 문인들, 예술가들, 놈팽이들과 일본어 강독 모임을 해도 좋고, 독서 모임을 해도 좋고, 주제를 정해 연구를 해도 좋고, 등산을 가도 좋고, 우울하다 싶으면 금곡이나 어디 중간에서 만나 술을 마셔도 좋고, 아무튼 내가 사는 가까운 곳, 아마 이곳이 내 터전이자 마지막이 되겠지만, 에서의 동료들과 고민을 나누고 미래를 공유하고 싶은 것이다. 어휴, 네가 절망스러워할 만하네. 그렇게 어려운 걸 원해서야! 하고 혀를 찰 수도 있지만 아셨죠, 구리 남양주 시민들! 지금 당장 검색창에 "구리", "남양주"를 치세요.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항상 좀비에 함락된 세상에 혼자 남아 영원한 겨울을 대비하여 장작을 모으는, 그런 기분으로 살고 있다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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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본어 공부 겸 줄곧 듣던 "모노가타리" 시리즈가 끝나고 별 수 없이 라디오를 며칠간 듣고 있는데 문득 드는 생각. 팝이란 것은 이제 더 이상 대중 문화가 아닌 세대적 집단 표상과 경험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에 대한 실례로, 라디오에서 주로 선곡되는 팝은 과거 60년대 이후부터 한국 문화에 유입된 영미권 노래를 통칭하는 "팝송"이다. (물론 간혹 최신 해외에서 유행 중인 "노래"를 소개시켜주곤 하지만 이것은 엄밀히 말하자면 "팝송"의 반열에 오르지 못하는, 개별적인 "싱글"의 지위에 머문다. 이것은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던 과거의 음악 청취 방식이 완전히 전환되었음을 의미하며, "록스타"나 "기록적 판매고를 기록하는 싱글" 등등의 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 증거다. 음악이 세대적, 지역적, 세계적 문화로 확장되는, 음악 창작자가 시대를 반영하는 영웅의 위상으로 도약하는 시대는 끝났다. 추측컨대 문화적 록스타의 마지막은 블러와 오아시스가 경쟁하던 90년대 초이며, 라디오헤드의 등장으로 그러한 구조는 완전히 폐지되었다) 이른바 "7080", "올디즈 벗 구디즈" "팝송"이 라디오의 주류를 이루는 것은 해당 세대(2차 베이비붐 세대)가 가장 충실한, 또는 유일하게 잔존하는 라디오 청취자들이기 때문이겠지만 한편으론 노래로 특정 시간을 폭넓게 공유하는 경험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는 점에서 조금 슬퍼졌다. 가령 나의 20대 초반을 뜨겁게 울렸던 영웅들의 음악, 스미스, 블러, 영국의 기타 록과 미국의 인디 록, 일본의 피쉬맨즈와 슈게이징 록 밴드들은 물론 그 당시의 친구들로부터 잔잔한 미소를 자아내게 하겠지만 만 명이 넘는 한국의 시민들과 열창할 순 없을 것이다. (당연히, 비시 캠프라이트라거나 보이프렌드스 데드와 같은 음악이 평일 두 시 93.9 CBS 음악FM에서 흘러나오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솔직하게 이 점이 가장 속이 쓰리다) 반면 이와 같은 경향은 포괄적인 라디오 전파 대신 지엽적인 인터넷 개인 방송이나 팟캐스트를 등장하게 했다. 과거의 사회 구성원들을 움직이게 한 준거 틀이 대의적인 거대서사라면 오늘날의 아비투스는 취향과 소재, 결국은 소비로 귀결되는, 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현행 의미로서의 "팝"은 끝났다. 무슨 소리요, 우리에겐 빅뱅과 엑소와 초아니 하니 등등의 아이돌이 있고 이에 환호하는 세계 전역의 팬들이 있는데 팝이 끝났다는 둥 공공의 기억이 끝났다는 망발은 어느 근거로 나오는 거요, 하고 따질 수도 있겠다. 맞는 말이고, 거기엔 추가적인 고찰이 따라야겠지만 강변에서 공장 동료들과 산울림을 부르고 대학 가요제 테이프를 겨우 구해 듣고 농성의 현장에서 상록수를 함께 부르며 그려내던 공공의 풍경은 다시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의 팝은 역사적 축적을 거부하므로, 소비는 기억되지 않는다. 상품은 교환된다, 위아래위위아래를 아무리 목청껏 불러도 그것을 훗날 떳떳하게 추억하는 소비자는 없을 것이다.

 

2.

어제는 가장자리 협동조합 주최의 사회적 책읽기 모임에 참석했다. 10분 정도 늦게 도착한 장정일 씨는 무척 화가 난 얼굴이었고, 급히 뛰어온 탓인지 연신 땀을 흘렸으며, 신문 컬럼란의 사진보다 고단하고 수척해 보였다. 그는 모임의 주제와는 상관없이 대뜸 "위안부-매춘부" 논쟁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열렬히 주창했고, 그에게서 여실히 느껴지는 분노와 수척함의 원인은 바로 그 탓 같았다. 한국 학계 풍토에 격노하면서, 젊은 저널리스트처럼 펜으로 그들을 고발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내비쳤다. 아마 글을 쓰기 위해 자료를 찾아보며 두문불출한 채 면도도 잊고 온통 그 문제에 골몰했겠지. 때문에 그는 모임의 주제에는 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어서 집으로 돌아가 쓰던 글을 마저 쓰고 싶어 안달이 난 소년 같았다. 강의실에 모인 열 명 남짓한 인원들은 진지했고, 성실하게 장정일 씨의 말을 경청했다.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부터 피 끓는 청년까지, 다른 무엇보다 그런 사람들을 볼 수 있어 즐거웠다. 사실 사회적 책읽기 모임이란 것이 뭘까, 궁금하기도 했고 그 모임이 토론회인지 강연회인지도 몰랐지만 아무튼 나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묵묵히 구석에 앉아 팔짱을 끼고, 대신 구경했다. 사무실과 강당과 사람들. 분명 무언가를 함께 그리고 싶은, 상상하고 싶은, 같은 곳을 보고 싶은 사람들과 그것을 가닿고자 노력하는 일은, 설령 언제나 불발에 그치고 불가능에 대한 덧없는 노력이라 비관하면서도, 아름답고, 어쩌면 삶에 내팽개쳐진 인간이 할 수 있는, 믿을 수 있는 유일한 것 아닐까.

 

3.

아, 그런데 가장자리 협동조합 가는 길은 너무 불친절했다. 심지어 길가에 그곳을 가리키는 어떠한 표시도 없었다. "말과활 아카데미"란 파란색 플랜카드가 전부였는데, 그곳이 가장자리의 본부인지 별도의 강의실인지 알 수 없었다. 어떠한 설명도 없었다. 강연이나 행사를 알리는 포스터나 하다 못해 시간과 장소만 적힌 A4 용지조차 없었다. 찾아올 사람은 어떻게든 찾아온다, 는 식이었다. 어쩌면 트위터나 페이스북 친구들이 많은 사람들은 어렵지 않은 문제일 수도 있는데 나처럼 친구도 없고 염병할 SNS도 안 하고 심지어 2G폰을 고집하는 구식 인간에게는 매우 유감스러운 외관이었다. 건물엔 불도 켜져 있지 않았는데, 사채꾼 우시지마 같은 놈들이 채무자를 족치고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여서 계단 중간에 내려왔다. 거리 끝까지 갔다 온 다음에야 그곳이 맞았단 사실을 깨달았다. 문은 꼭꼭 닫혀 있었고, 실내는 아늑했다. 갑자기 신촌 쓰레기장에서 불란서 리오따르 교수님 서재로 들어선, 마법적인 순간 같았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안과 밖의 구분, 안에서 보는 풍경과 밖에서 보는 풍경의 불일치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나중에 좀 더 다듬어서 쓸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리겠다. 아주 조금의 노력으로 이런 불쾌한 인상을 해소할 수 있는데 가장자리 관계자들에게 촉구하는 바이다. 화장품 가게나 전당포도 아닌데, 다른 무엇보다 사회문화적으로 변화를 갈망하는 사람들과 단체가 이런 식으로 나오면 정말 기분이 나쁘다. 머리와 입은 치밀하고 바쁜데 문화공학적으론 언제나 빵점이다.

 

4.

성당을 갔다. 갈 때마다 감읍하며 기적을 경험하는 것도 웃기겠지만, 아무튼 이번 미사는 아주 고요한 마음으로, 솔직히 다른 생각도 가끔 하면서 보냈다. 나는 신자가 아니다. 앞으로 세례를 받을 지도 모르겠다. 그럼 여기 왜 나오슈? 하고 교구 반장님이 흘겨볼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신자가 아닌 내가 성당에 꾸준히 나오는 것은 일종의 애걸복걸이다. 절망적인 걸 안다. 하지만 희망을 노래해야 한다. 희, 망, 하고 발음하는 거 말고 아무튼 개싸움을 벌여야 한다. 나중에 그래도 하느님한테 죄의 용서를 구하면서 '저는 그래도 이 정도는 해봤시유' 하고 발뺌용이랄까. 나한테 성당 미사란 그런 의미다.

 

5.

신자가 아니라서 국수를 안 줬나? 농담이다. 항상 미사가 끝나자마자 쌩 빠져나왔는데, 오늘은 "구경"을 하고 싶었다. 미사가 끝나고 복음을 전파하러 가라고 할 때 혼자 성당에 남아 잠깐 묵상을 올린 다음, 잊지 않고 내게 악수를 청한 신부님에게 조금 감동했다, 1층 식당에 내려갔다. 커피를 마시면서, 사람들은 미사가 끝나고 뭘 할까, 궁금한 걸 보고 싶었는데 일단 커피가 없었다. 식사 준비로 모두 바빠 누구에게 물어볼 엄두도 나지 않았다. 나는 머그잔에 냉수를 마시면서 구석에서 홀을 보았다. 오늘의 식사 메뉴는 잔치국수였다. 고명이 잔뜩 들어간 국수 그릇에 남자 신도들이 돌아다니면서 육수가 든 주전자를 기울였다. 활력이 있었다. 신부님은 어느 노신사와 달력을 보며 무슨 대화를 한참 했다. 성탄절을 앞두고 신도들과 준비할 게 있는 모양이었다. 엄마가 있는 부엌을 향해, 꼬마 여자아이가 계속 "나는 왜 국자가 없어?" 하고 물었다. 이건 정말인데, 화가 나거나 꽁해 있는 게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건데, 한참 서있는 내게 누구도 국수 먹었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그렇다고. (쓰고 나니 좀 속상하네) 성당 밖에는 아기 예수를 기념하는 장식,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의 마굿간이 있었다. 그런데 아기 예수는 없었다. 그 자리는 비어져 있었다. 가만히 구경하고 있는데, 어느 여신도 분이 다가왔다. 성탄절이 오면 아기 예수도 여기 오냐고, 그러니까 마굿간의 빈 자리에 오냐고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대답하며, 이곳에서 본당으로 옮긴다고 대답했다.

 

6.

어제 합정에서 산 타르트, 이것저것의 온갖 베리들이 얹힌, 를 할머니와 함께 먹고 집에 돌아왔다. 공부나 책이 손에 영 잡히지 않았다. 핸드폰을 집에 두고 나무를 하러 나갔다.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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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또복 :

나무의 몫까지

2015. 12. 9. 20:28 from blur girl's diary

 

모두들 난방을 도시가스나 등유 내지는 전기장판으로 해결하고 있겠지만 남양주에선 아직까지 난로, 그러니까 나무 장작을 연료로 하는 방식이 유효하다. 이는 시각적으로나 후각적으로나 아주 근사하지만 단 하나의 단점이 있다면 땔감을 지속적으로 요구한다는 것, 그리고 땔감을 마련하는 행위는 결코 낭만적이지만은 않다는 것.

 

오전 내내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의 앞부분을 번역했고, 식사 후에는 땔감 마련하기에 나섰다. 집에는 나뿐이었고, 제대 이후로는 처음 입어보는 미 공군 점프슈트까지 착용(군대에서 챙겨온 깔깔이 바지까지 껴입었는데 입는 순간부터 땀이 차리란 걸 직감할 수 있있다), 갈색 체크무늬 중절모까지 쓰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밖으로 나갔다. 죽은 나무를 줍기 위해 뒷산을 오르는데, 이웃집 부부가 아주 조심스럽게 누구냐고 물어왔다. 하긴, 공군 점프슈트 위에 용이 그려진 화교식 점퍼를 입고 손도끼를 쥔 채 산을 오르는 청년을 본다면 모두가 겁에 질릴 것이다. 나는 앞집에 살고 있으며, 땔감을 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뭔가, 프라이빗한 남의 공간을 마구 침탈하는 기분이 들었다.

 

산에는 죽은 나무가 뜨문뜨문 떨어져 있었다. 굳이 깊은 산까지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산의 초입에서 나는 나뭇가지들을 주울 수 있었고, 그 과정에서 밤송이에 찔리긴 했지만 아무튼 소득은 괜찮았다. 마당까지 질질 끌고 와 시커멓게 녹이 슨 톱으로 슬근슬근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나무는 좀처럼 잘리지 않았다. 땀이 송골송골, 깔깔이 바지 안으로 맺혔다. 그것은 원래 영하 날씨의 혹한기 때나 입는 것이었다. 운전을 하면서도 드는 생각인데, 기름을 대체하기 위해 원시적인 인간의 체력만을 쓰는 것은 아주, 아주 혹독한 일이다. 차를 타면 5분에 주파할 거리를 30분 내내 걸어온다거나 실내 온도 몇 도를 올리기 위해 이렇게 톱질을 온종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기분은 아주 좋았다. 몸을 쓰는 일, 누군가의 지시 때문이 아니라 나를 위한, 기본적으로 무의미하면서 전방 주시 운전처럼 잡념을 허락치 않는 노동은 실로 신성하다. 이를테면 설거지, 잡초 뽑기, 그리고 톱질 등등. 아, 운동 가운데서는 수영이 포함될 수 있겠다. 런닝이나 웨이트 운동은 짜증날 정도로 힘들지만 수영은 특성상 죽음의 문턱에서 아슬아슬하게 유희하는 종목이므로 짜증이고 투정이고 할 수가 없기에, 집중하게 된다.

 

일차적으로 수확한 나무들을 모조리 베고, 마당의 장작 더미에 쌓으니 흥부적인 쾌감이 느껴졌다. 겨울 축적의 쾌감. 녹슨 톱으로 낑낑거리느라 죽을 맛이었는데, 어깨 저린 건 둘째치고 장작 밟는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그런 고단함도 사라졌다. 하여, 이차 수확에 나섰다. 이번엔 이웃집 부부가 볼 수 없는 다른 산으로. 넝쿨을 피해 강아지처럼 수그린 자세로 산을 올랐다. 몇 차례나 죽은 나뭇잎들로 푹신푹신한 바닥. 땔감으로 적당한 죽은 나무를 발견하고 횡재했다 싶었다. 워낙 커서 끌고 내려오는 데에 애먹었다. 넝쿨에 걸려서 이리저리 잡아당겨야 했다.

 

심기일전하고 다시 톱질을 하려는데, 뭔가 불안하다 싶더니만 이놈의 톱날이 뎅겅 부러지는 게 아닌가. 공구 서랍에서 다른 톱을 찾았지만 상태는 더 끔찍했다. wd40을 범벅으로 뿌렸지만 별 효능이 없었다. 오기가 생겼다. 차를 끌고 동네의 철물점을 찾았다. 새로 생긴 철물점엔 다른 손님들이 많았지만 기본적으로 접대하는 자세가 형편없었다. 친절과 배려라곤 조금도 없는, 자신이 응대를 하는 게 자존심 상해 참을 수 없단 걸 구태여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머저리였다. 더군다나 톱들은 모두 비쌌다. 기가 막혀 그 이유를 물어보니 일제라나. 얼른 뛰쳐나왔다. 다음의 철물점은, 중학교 동창의 부모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점프슈트를 입고, 맥 드마르코 같은 모자를 쓴 중학교 친구를 알아보진 못하겠지. 다행히 동창의 어머니는 나를 몰라봤고(모른 척했을 수도 있다), 톱도 조금 쌌다. 모조리 베어주마, 하는 각오로 다시 집으로 귀환. 라디오에서 배칠수와 영미 씨? 누군가가 신청곡을 받아 짧게 성대모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들었다. 어처구니가 없어 헛웃음을 자아내는 방송이었다.

 

새 톱을 스르릉 꺼내 나무를 베는데, 신세계였다. 나무가 단칼에 베이는 것이었다. 전까지 녹슨 톱으로 흥부 부부가 박 썰듯이 낑낑대던 것이 우스울 정도였다. 아무튼 난 신이 났다. 산에서 가져온 나무들을 단숨에 베었다. 장작 더미도 제법 높이가 쌓였다. 몸이 많이 피곤했지만 톱질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이건 나로서 좀 이상한 일이다. 오버드라이브, 그건 나와 맞지 않는다. 난 항상 그만 두어야 할 때를 잘 알았고, 거기에 순응하며 무리하지 않았다. 항상 적당한 수준에서 해왔다. 그런데 요즘은 과거의 나라면 그만 두었을 때를 훨씬 초월하곤 한다. 어제도 그랬다. 일본어 번역을 하다 탄력을 받아 그날 밤 내내 뭘 했는지는 비밀이지만. 아무튼 마당에 쌓여 있던 나무까지 손을 댔다. 상당히 고단한 작업이었다. 산에서 주워온 죽은 나무보다 훨씬 두껍고 단단한 각목이었기 때문에. 하지만 난 굴하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슥슥삭삭 베었다. 깔깔이 바지와 점프슈트 안은 이미 땀으로 젖었다.

 

모든 장작을 베고 나서, 집으로 돌아와 옷을 갈아입었다. 소파에 앉아 넋을 잃고 잠시 땅콩 쿠키를 먹다가 침대에 들어가 재즈 라디오를 들으면서 책을 읽었다. 중고 서점에서 산 <거리의 미학>이란 책이었는데, 일제 시대에 출판된 것처럼 절반이 한문인 데다가 일본식 번역투가 역력했다. 그래도 건축과 공간에 대한 이야기는 내게 새로운 감흥을 준다. 몇 줄 인상적으로 읽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30분 정도. 아마 <센트럴 파크에서의 스케이팅>을 듣던 중일 게다. 해가 지기 전에 체육관을 다녀왔다. 아버지와 둘이 청하를 마셨다. 아버지는 가문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셨다. 나무의 몫까지 두 배로 열심히 살아야겠단 한낮의 다짐이, 톱질의 뽀얀 가루처럼 일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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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가에서

2015. 12. 8. 00:20 from blur girl's diary

 

요 며칠째 기분이 좋지 않다. 혼자 진단컨대, 나는 무력함에 떨고 있다. 인형의 집처럼, 이곳은 안전하고 충분하지만 한편으론 내 자존심을 마구 상하게 하는 것. 하소연할 수 없이, 그저 견디는 수밖에, 한편으로는 그것이 지긋지긋하고, 스스로를 위무하는 나 자신이 견딜 수 없이 한심하다.

 

오후 내내 침통한 기분이 가시질 않았다. 차에 올라탄 순간, 퍼뜩 북한강이 보고 싶어졌다. 바다처럼 거창하진 않지만, 언제나 조용히 존재하는 곳. 바다와는 또 다른 환기를 주는 강의 풍경이 보고 싶었다. 다행히, 도로가 새로 정비되면서 북한강으로 가는 길은 정말 스트레이트란 말이 이때를 위해 만들어진 것처럼, 단숨에 갈 수 있었다. 신호만 걸리지 않았다면, 과속을 할 수 없는 스노우 타이어만 아니었다면 10분이면 달려올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빨리 북한강에 가서 뭐하나. 석관동에서도 중랑천에 갈 때 2~30분은 족히 걸렸다. 자전거로 걸어가는 도로가 은근히 빙 돌아가는 통에... 꽤 귀찮은 여정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아무튼 어린 시절 아버지와 종종 낚시를 하러 왔던 원대성은 자전거 도로가 신설되어 예전의 경관은 사라져 있었으나 허름한 낚시 가게가 그대로인 것처럼 어렴풋한 기억의 풍경이 사금처럼 남아 있었다. 차를 세워놓고, 낚시 가게 아래로 아슬아슬 형성된 오솔길을 따라 강가로 내려왔을 때, 선글라스의 갈색 시야 너머로 들어온 풍경이 아름다웠다. 버릇처럼 디지털 카메라, 용산에서 거금을 들여 수리한 소니 카메라, 를 "복원 키트"에서 꺼내려는 때에, 기계적인 기록 탓에 심상에 내려앉는 서정의 효과가 무뎌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니까, 어차피 사진을 찍으니까 나중에 생각이 나면 이때의 감동을 찾아보면 되잖아, 하고 안일하게 순간을 맞이하는 느낌. 이런 맥락이 아니었지만 언젠가 보드리야르가 대담 중에 했던 말, "사진은 아름답다. 하지만 그것을 말해선 안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 삶의 마법을 구태여 시각적으로 재현하려는 시도에서부터 만물의 역사는 타락한 것일지도 모른다. 사물과 나의 관계부터... 북한강을 디카로 찍으려는 나처럼.

 

이렇게 말은 했지만 나는 강변의 풍경을 디카로도 찍고, 필름 카메라, 이건 종로에서 마찬가지로 거금을 들여서 수리했지, 로도 찍었다. 얇은 셔츠와 점퍼만 덜렁 입고 나온 탓에 조금 서늘했지만 덕분에 정신이 번쩍 났다. 기분이 좋아졌다. 아마... 강가에 서서 황량하게 공중으로 뻗은 나뭇가지를 볼 때부터? 난간에 기대어 멈춘 듯 고요히 흐르는 북한강을 보았다. 황량함. 남양주의 겨울은 있는 힘껏 느린 속도로 황량하게 죽어가는 풍경. 하지만 이 풍경은 내 것이 아니다. 광화문에도 그랬고, 지금으로선 세상 모든 곳이 그렇다. 내가 말할 수 있는 곳은 오로지 과거의 기억들뿐인데, 그 기억이란 부정확하기 짝이 없는 데다가 지금은 상실된 내면의 풍경이다. 하소연조차 불능에 빠진 시인.

 

북한강을 쉽게 올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을 지도 모른다. 남양주. 이곳에서, 아무도 들리지 않는 발악을 벌이다, 진공 상태의 불길처럼 서서히, 시시껄렁한 평생을 보내다 죽을 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겁난다. 야심에 스스로를 불태워 죽는 것. 하지만 지금 내가 두려워하는 건 발악을 하지 않아서다. 발악을 하는 중엔 무섭고 초조하고 안달복달, 그런 걸 느낄 겨를도 없을 것이다.

 

땅거미가 질 즈음, 체육관으로 돌아와 러닝머신에서 5km를 뛰었다. 작년 여름부터 꾸준히 해왔으니... 1년 반이 넘게 뜀박질을 계속 하고 있는 셈이다. 대견하다! 이것만으로 훌륭하다! 기분이 좋아졌다. 그런데 근육은 이상할 정도로 붙지 않는다. 오버 웨이트를 하지 않아서겠지. 이론상으로는 차츰차츰 무게를 늘려가고, 또 거기에 맞게 근육이 늘어가야 맞는데 현실의 나로선 전혀 따라가지 못한다. 오늘 10kg을 들면 내일은 15kg을 들어야 하는데, 10kg 들기에도 버겁다. 그 한계. 그 죽을 것 같은 버거움을 초월해야 근육이 붙을 텐데, 늘 현상 유지다. 복근 운동을 하고 있는데, 관리인 아저씨가 괜히 내 앞까지 왔다가 말없이 돌아갔다. 체육관엔 나밖에 없었고, 나는 석 달째 회비를 내지 않았기 때문에 상당히 조마조마하며 누워 있었다. 그가 덜컥 소리를 지르며 망신을 주면 어떡하지. 능청을 떨면서, 아 벌써 돈 낼 때가 됐어요? 하고 웃어야 하나, 아니면 지갑을 두고 왔다며 통사정을 해야 하나, 어쨌든 구질구질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돈을 낼 수 있을 주머니 사정 때엔 그가 없고, 내가 돈이 없을 때 그가 눈치를 준다. 항상 이런 식이다. 조만간 돈이 들어오면 두 달치라도 내야겠다.

 

어둑어둑한 저녁, 체육관에서 나오기 전부터 아삭아삭한 식감의 야채를 잔뜩 먹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집에 있는 야채를 몽땅 채썰어 먹어야지 싶다가 문득 말라비틀어진 양파 하나만 덜렁 나올 것 같은 두려움에 농협을 들렸다. 목표는 연근. 그런데 너무 비쌌다. 하나에 5천원, 큰 건 7천원. 말이 되나? 철이 아닌가? 기가 막혔다. 그냥 집에 와서 냉장고를 뒤졌다. 마늘, 양파, 당근, 파, 양배추. 이 정도면 됐다. 마늘과 양파를 잘게 썰면서, 헤어진 여자친구를 생각했다. 요리를 아주 좋아하고, 아무튼 요리 그 자체였던 그녀와 헤어진 이후로 나는 요리를 거의 하지 않는다. 뭔가,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아무튼 상당히 오랜만의 요리였다, 라고 하기도 무안할 만큼 간단한 요리였는데 채썬 야채들을 간장과 굴 소스를 베이스로, 차례로 후라이팬에 볶은 다음 따뜻한 밥 위에 계란 노른자를 얹어 먹는 것. 깻잎을 잘게 찢어넣는 게 유효했다. 요리는 참 순간의 선택이 모든 걸 좌우한다. 눈에 보이는 걸 막 넣는다고 되는 게 아니다. 별 거 아닌 게 맛의 전부를 결정하기도 한다. 아무튼 오늘 요리는 대만족. 약간 덜 익은 양배추의 씹는 맛과 계란의 조화가 참 행복한 맛. <아빠는 요리사>를 보면서 혼자 식사를 했다. 이 만화 역시 헤어진 여자친구를 대변하는 작품.

 

빨래를 널면서 혼자 소리를 질렀다. 뭐라도 말하지 않으면 힘이 안 나기 때문에. 누가 옆에 있으면 소리 지르기도 무안하지만, 이렇게 혼자 집에 있을 땐 기세가 산다. 하아압! 기합을 불어넣자.

 

정빈이가 시를 또 보내왔다. 혼자 고군분투하는 모습에 감읍하여 힘을 내 시를 보냈다. 워크샵 핑계로 루틴을 잃어버린 게 악수였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꾸역꾸역 보냈던 시들이 다시 읽어보니 형편없는 졸작들인지라 '안 되는 놈은 뭘 해도 안 되는군' 하는 생각뿐이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미 오래 전에 끝난 연애더라도 발악하고 있는 순간만큼은 누구나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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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각도 유분수

2015. 12. 2. 22:14 from blur girl's diary

 

내 다락방엔 어울리지 않게 두 개의 영화 포스터가 걸려 있는데, 하나는 마릴린 먼로가 휴양지에 엎드려 육덕미를 과시하는 엽서 크기의 사진이고, 또 다른 하나는 모직 계통의 정장을 입은 드류 배리모어가 지미 팰론 어깨에 기대어 지긋이 정면, 그러니까 책상에 앉은 나를 바라보는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 포스터가 그것이다.

 

영화 <나를 미치게 하는 남자>는 닉 혼비의 소설 <피버 피치>를 영화화한 <퍼펙트 캐치>가 한국에서 개봉하면서 이처럼 노골적이면서 별 매력 없는 제목이 붙었다. 미국이든 한국이든, 다양한 제목으로 검색이 가능하며 원작자인 닉 혼비와 주연 배우로 분한 드류 배리모어가 제작 단계부터 참여했다. 영화사적으로든, 흥행적으로든 괄목할 만한 성과는 당연히 없으며 오늘날까지 이 영화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정신 구조를 의심할 필요가 있다. 드류 배리모어의 열렬한 팬이라면 모르겠지만. 아무튼 난 그녀의 팬도 아니고(이 영화 전까지 드류 배리모어가 출연한 영화는 한 편도 본 적이 없다), 닉 혼비의 소설 역시 본 적이 없다. 포스터에 선전했다시피 이 영화는 카메론 디아즈를 유명하게 만든 천박한 소프트 포르노 영화인 <메리에겐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의 패럴리 형제가 연출하긴 했지만 코엔 형제처럼 거장도 아니다. 기대치 제로의 상황에서 내가 이 영화를 찾아본 이유는 두 개 정도가 될 것인데, 하나는 군 생활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영화 중 하나였던 <내 남자친구의 결혼식>의 여운을 느낄 수 있으리란 막연한 기대 심리, 그리고 다른 하나는 포스터 속 드류 배리모어의 모습이 퍽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어젯밤은 좀 복잡한 머릿속을 비우고 싶었고, 취하진 않았지만 어쨌든 영화를 틀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영화는 아주 불쾌하다. 나는 격노하면서 영화를 봤는데, 다른 무엇보다 영화의 허섭한 만듦새 때문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형편 없는 영화들 속에서 나름의 빛을 발견하는 데에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고 자부하던 나였기에, 이러한 실망은 다소 곤혹스러웠다. 뭐, 소비 사회의 인정 투쟁과 지위 욕망에 대한 이데올로기를 얘기하는 건 넌센스지만 다른 무엇보다 이 양반들이 왜 이렇게 행동하고 미쳐 날뛰는지 이해할 수 없다. 배우들 역시 '나는 입금된 만큼만 연기하면 끝이다' 이렇게 임하는 것처럼 떠들썩하게 날뛰긴 하는데 눈빛 안으론 다른 생각을 품고 있는 듯하다. 그들조차 이입이 안 된다는 소리 아닐까. 

 

영화의 출발은 아주 단순하고, 어찌 보면 매력적이다. 뉴저지에서 보스톤으로 이사 온 외로운 소년이 보스톤 레드삭스의 광적인 팬이 되고, 그런 남자와 연애를 하면서 갈등을 빚는 커리어 우먼의 좌충우돌 로맨스 코미디. 닉 혼비 자신이 레드삭스의 팬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 그나마 재미있고 볼 만한 장면은 오로지 레드삭스와 관련된 씬뿐이다. (펜웨이 구장, 아예 지정석이 되어버린 곳에서 척척박사처럼 레드삭스의 역사 모든 것을 줄줄 꿰차는 사람들)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 요소들, 심지어 이 영화의 가장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일밖에 모르는 커리어우먼과 야구밖에 모르는 레드삭스 팬의 사랑-우격다짐조차 야구 소재에 비하면 부차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나를 분노케 한다. 생기 없이 요란한 소동이란 거다.

 

이 영화의 가장 끔찍한 장면은 결말부에서 홈런처럼 터지는데, 야구광에 실망한 여자가 다시 마음을 돌려먹는 계기가 바로 남자가 시즌권을 다른 사람에게 판다는 소식을 접하는 것이다. (12만 달러에 육박하는 금액이긴 한데, 아무튼 좀 웃긴다) 물론 남자에게 야구와 내년도 전경기 입장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그녀도, 관객도 다 알겠지만 그녀의 갑작스런 심정 변화는 어이 없을 정도로 급작스럽고 리얼리티가 떨어진다. 어느 정도냐면, 여자는 시즌권 판매를 말리기 위해 양키즈와의 플레이오프 경기 도중 필드로 난입한다. (일부러 살살 뛰는) 심판들을 피해 센터필드부터 내야석까지 달려온 여자는 남자와 감동의 키스. 환호하는 관객들. 에휴, 어쩔 수 없군, 하는 표정의 심판들. 이 모든 게 레드삭스 팬의 허황된 판타지임이 드러나는 순간. 이후의 전개는 더욱 노골적이다. 해프닝에 힘입어 레드삭스는 양키즈에게 세 경기가 뒤지고 있었음에도 나머지 경기에서 내리 4승을 거두며 월드 시리즈까지 진출, 파죽지세를 이어나가며 결국 챔피언에 등극한다. 마지막 경기에서 선수들과 방방 뛰며 기쁨을 나누는 남녀의 진한 키스는 당연지사. 그렇다. 이것은 밤비노의 저주(레드삭스 선수였던 베이브 루스를 양키즈에 매각하면서 보스턴은 한 세기가 넘도록 우승하질 못했다)에 히스테리를 일으키다 그만 맛이 가버린 야구광 남성의 워나비다. 물론 레드삭스의 팬들이라면 금발 커리어우먼과의 만루홈런을 서비스로 하여 맥주 6입을 소파 옆에 두고 파티를 벌였겠지만(보스턴이 배경이다 보니 사뮤엘 아담스도 자주 등장한다) 남양주 다락방의 나는 공감 제로, 격노만.

 

야구든, 아이돌이든 유난스럽게 광적인 애정을 쏟아붓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적어도 나의 방식은 아니다. 무엇보다 나는 나만의 전유물이 되어야 할 대상을 다른 누군가와 나누는 것이 싫다. (심지어 스미스가 내한을 왔을 때에도 나는 '지들이 대공분실로 와야지 내가 왜 가냐'고 시건방진 소리를 했다. 하지만 대공분실에 찾아와도 나와 소주를 걸칠 게 아니라면 내려가지 않았을 것이다. 블러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최근의 예외적인 사례가 생겼는데 그것은 이소라다. 이소라 공연이라면 관객들 사이에서라도 보고 싶은 의향이 있다) 팬들은 자신이 받고 싶은 사랑의 양만큼 대상에게 행한다. 돌아오지 않는 사랑은, 반응 없는 사랑은 결국 자기 자신을 좋아하는 것이다. 짝사랑은 무척 매혹적이지만 결국 자기 자신과 연애하는 것이기 때문에 오래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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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대작전

2015. 11. 26. 23:33 from blur girl's diary

 

일전에 삼각대 문우들과 전설적인 술자리를 또 가졌을 때, 그때 호쾌하게 권했어야 했는데 못한 말. (사실 우리는 항상 벼르고 벼르다 서로를 만나 각자 준비한 얘기의 삼할도 꺼내놓지 못하고 분위기에 넘어가 술을 퍼마시고 종국엔 기억을 잃는 식으로 술자리를 마감하는 것 같다. 만약 우리가 술을 마시지 않고 담론을 발전시킨다면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라든가 들뢰즈와 가타리라든가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콤비들처럼 굉장한 지적 센세이션을 일으키지 않았을까? 한편으론 이 소주적 감정 없이 불처럼 뜨겁게 언쟁하는 게 가능한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그때 나는 제안하고 싶었다. 미친 대작전을. 가족, 여자친구, 절친들을 모두 모아 스키 리조트를 가자고. 우리 중에 스노 보드를 멋들어지게 타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스키장 쿠폰을 끊고 겨울을 맞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김영삼과 생트 마리 해변처럼 정말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 바로 스키장과 삼각대 문우 아닐런지? 난 여전히 그런 미친 유대적 순간에 대한 애착이랄까, 갈망이 있나 보다. 그렇게 데이고도 매달린다. 조른다. 아직도 좋니? 하고 주변 친구들이 뭐라 말은 못하고 한심해하면서도, 그래도 나는 그런 자리가 좋다. 평생 잊지 못하는 그런 하루가 나를 살게 한다. 아무튼, 그때 이 얘기를 취한 김에 빼도 박도 못하게 정했어야 했는데.

 

어제 다리 운동을 하면서 음, 내일 근육이 좀 당기겠군, 하고 예상하긴 했지만 아침부터 몸이 안 좋았다. 깨진 전구처럼 자글자글 온몸이 박살이 나는 것만 같았다. 집에 혼자 남게 되자 대놓고 끙끙거리면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재즈, 나는 얼마 전부터 올레 티비의 재즈만 틀어주는 사티오 재즈 명반 1001선인가 하는 방송을 곧잘 듣고 있다, 를 들으면서 한 겨울 오전부터 몸이 안 좋아 침대에 누워 있노라니 군대 생각이 많이 났다. 마지막 겨울을 보내며, 나는 무척 아팠던 것이다... 지독한 감기였지만 나는 병장이었다. 나는 출근 도장만 찍고 바로 생활관으로 올라와 어둠 속에서 잠을 잤다. 군화도 벗지 않고... 시디 플레이어로 케니 드류, 듀크 조던의 피아노를 들으면서... 그래서 나는 두 사람의 피아노를 들으면 그 선명한 기억의 풍경이 떠오른다. 하얗게 눈이 쌓인, 그 위로 오전의 눈부신 빛이 내리쬐고, 바쁜 다른 사람들의 일상과, 노곤노곤한 감기의 감각, 살얼음처럼 아슬아슬하게 회화를 그리듯 건반을 오가는 두 피아니스트들, 현란한 연주 속에 숨겨진 아주 심플한 '오리지널 테마', 꿈의 고원처럼 새하얀 눈밭 위에 서있는 듀크 조던 사진을 쓴 시디 재킷까지. 꺼내 보면 꽤 많은 군대에서의 아름다운 기억.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고 40분 가량을 잤다. 더 게으름을 피우면 안 되기에 소리를 지르며 억지로 힘을 냈다.

 

스즈키 토미의 <이야기된 자기>를 다시 읽고 있다. 다시, 라고 하니까 예전에 독파했던 애독 서적을 다시 읽는 느낌인데 그런 건 전혀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 문학 관련 수업 때 하루키 소설을 갖고 리포트를 썼다가 강사가 아주 신랄하게 비판했고, 잘 알지도 못하면서 막 썼다는 식의 적절한 지적이었는데 어쩌면 내 인문학적 열등감과 트라우마의 근원이 거기서 도드라진 게 아닐까? 아무튼, 그러면서 권했던 책이 토미(Tommy가 아니라)의 책. 나름 유명해서 다른 사람 집 서재에서도 많이 봤다. 윤형네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런데 나는 앞서 말했듯이, 가족이 외출하고 나만 남은 집에서, 침대에 반쯤 누워, 사티오 재즈 방송을 들으며 이 책을 읽고 있고, 괜찮은 재즈가 나오면 책 양장본 안쪽에 제목을 기입하곤 한다. 그런데 내가 갖고 있는 연필은 3H의 심이 아주 연한 것이고, 양장본은 아주 고급 용지라 써도 빛에 굴절시키지 않으면 글자가 보이지 않는다. 하여간에. 그런데 어느 불란서 재즈 싱어(여성)가 부른 플라이 투 더 문의 불란서 버전을 들으면서, 왜 불어는 노래로 들으면 그닥 감흥이 없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그것은 어쩌면 불어의 일상 회화 자체가 이미 음악성으로 충만해서일지도 모르고, 그게 아니면 그 가수의 노래가 그냥그런 수준이어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푸시 캣이라거나 프란시스 골과 같은 1960년대의 샹송 스타들을 들으면 또 얘기가 달라지니까.

 

뭐, 그런 얘기입니다.

어서 난로 때우고 싶다. 한 시간 넘게 키보드를 치는 내 오른손 엄지와 검지가 점점 곱는다.

그리고 문득 평생 가족과 같이 살면서 내 방에 틀어박혀 글만 써도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소라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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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부쩍 내 다락방이 심심하다. 내 자투리 시간을 성실히 함께 하던 만화책들의 신선함이 탁해질 무렵, 바로 그 순간부터인 것 같다. 하루는 작정하고 (맨정신으론 좀 그러니까) 술을 왕창 마시면서 옛날 게임을 시작했는데 이틀을 가지 못했다. 영화도, 책도... 마찬가지였다. 할 것 없는 방구석에서 나는 너무나도 심심했다. 꽤 강렬할 정도로 싫은 감각이었고,  다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그런 경험. 하지만 뭔가 대안이 없으면 오늘밤도, 내일밤도, 애인이 없는 모든 밤들을 그렇게 보내야겠지? 나는 꽤 노력했다. 용산 전자상가를 찾아가 <바이오 하자드4>를 사야지. 이 추운 겨울에 무슨 좀비 게임인가 싶지만, 난 원래 겨울에 비치 보이스를 듣는 놈이니까 상관 없을 줄 알았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다시 찾은 용산은 대부분의 게임 매장(뿐만 아니라 다른 상가도)도 말 그대로 허물어져 있었고, 겨우 한 블록 남은 상가의 게임 매장 사람들(지하에 유폐된 초능력자들 같았다. 콘 사토시 만화에 나오는)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 아유, 요새 <바이오 하자드4> 붐이에요? 엊그제부터 다 쓸어가네. 없어요, 없어. 정말 그랬다. 나온지 10년이 지난 게임의 리바이벌 소식은 내 알 바 아니지만, 그래도 큰 맘 먹고 서울까지 나왔건만 너무 한 거 아닌가. 운명에 굴복하기 싫어서 (울 것 같은 얼굴을 숨기고) 빨빨 돌아다닌 끝에 겨우 찾은 한 곳에선 일본판을 2만 5천 원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아, 하나님이 정말 나한테 게임하지 말라는 거구나. 너 지금 게임 할 때 아니다. 게임하면 진짜 좆된다, 진짜. 그렇게밖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별 생각 없이 들린 소니 대리점에서 소니 디카(똑딱이) 수리비를 엄청나게 청구했다. 그 염병할 케이블은 한국에 재고가 없어서 다음주에나 보내준다고 했다. (글을 쓰는 지금까지 안 왔다) 올해 나는 필름 카메라와 디지털 카메라 두 개를 수리했는데 모두 엇비슷한, 나로선 상당한 금액의 수리비가 들어갔다. 뭔가 운명 같다. 게임하지 마라, 앞으로 사진 찍을 일 많으니 투자하는 셈 쳐라.

 

아무튼 덕분에 요즘 책은 많이 읽는다. 선물 받은 애처럼 온종일 읽는다. 메인은 작업을 위한 공부 겸 읽는 이론서, 비평서들이지만 하마터면 <바이오 하자드4> 할 시간에도 이젠 책을 읽는다. 하루키의 <포트레이트 인 재즈>는 생각보다 가벼워서 이틀에 독파했다. 남는 게 없는 책. 하루키도 러닝머신 위에서 대충 생각한 몇 자를 그대로 원고로 넘긴 느낌이다. 심지어 재즈를 듣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지 않으니, 이는 좀 심각한 거 아닌가. (뭐, 나도 제이비엘 스피커에 엘피 레코드로 소파에 누워 제임슨을 마시며 들어보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으니 궁시렁거릴 수밖에) 그래도 읽는 동안은 재밌었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리뷰 알바'를 하면서 문득 책에 나온 문구가 떠올랐다. 그것은 줄리안 캐논볼 애덜리를 소개하는 글이었으며(그는 이 책에 내가 들은 몇 안 되는 재즈 뮤지션 가운데 하나이며, 다음의 인용문은 그를 지칭하여 묘사한 게 아니란 걸 참고했음 한다)

 

"진정 뛰어난 음악이란(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죽음을 구현한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암흑으로의 추락을 견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은 대개 악의 과실에서 짜낸 농밀한 독이다. 그 독을 마실 때의 감미로운 경련, 시간의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강렬한 뒤틀림이다."

 

음,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이러니저러니, 하루키는 글을 참 잘 쓴다. 다 읽고 나면 뭔가 속은 느낌이랄까, 그런 찝찝함이 있는데 그것 역시 다 그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고, 그런 찝찝함을 읽는 동안 만큼은 잠시나마 잊을 수 있는 것도 그가 글을 잘 쓰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는 소리다. 내가 이 문장을 떠올린 이유는 '알바' 때문에 보게 된 수많은 글들에 결국 부재하는 그 절박함. 문학은 결국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의 두 절박함이 마주치는 순간의 힘 아닐까. 본질적으로 나아가면 절박함의 근원을 죽음에서 찾을 수 있고, 결국 예술은 죽음에 대한 경미한 체험이 된다. 그렇다고 진짜 죽어선(혹은 진짜 죽으라면) 곤란하다. 거기서부턴 사건이 된다. 아무튼, 우리가 삶에서 체험하는 절박함은 결국 생에 주어진 조건 속에서의 투쟁과 반동 사이의 긴장, 딜레마이고, 위대한 예술은 죽음 언저리를 우리 대신 다녀옴으로써 우리에게 거대한 정서적 환기를 시킨다. 그런데 특히나 내가 '알바'에서 본 글들은 분명 삶에서 건져올린 일기, 혹은 전기문들임에도 거짓말에, 또 다른 거짓말을 보태는 구태의연한 윤리 교과서를 보는 것만 같았다. 죽음이란 말끔히 소독된 양로원에 모여앉아 걸그룹 아이돌을 보는 노인들 같은 느낌이랄까.

 

책을 많이 읽고 있어서인지, 눈의 피로에 대한 의식을 많이 하게 된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평소에도 눈을 쉬질 않잖아? 책을 안 보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를 할 테니... 그것만이 아니라 삶의 거의 모든 정보를 시각 요소로 접하니 눈은 정말 쉬질 못하는 것이다. 끔찍했다. 요새 문학이란 무엇일까, 하는 고민을 하는데, 어젯밤 국방 라디오를 듣기도 했고, 눈이 아닌 귀로 듣는 문학에 대한 아이디어가 조금 생겼다. 나만 생소해서 그렇지 해외든 국내 어디든 낭송회 형식의 문학 행사가 많긴 하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우리들만의 낭송회"는 무척 아름다웠다. 또 재미있었다. 문학적이었고. 그런데 요새 새로이 관심 갖게 되는 낭송회, 그니까 "우리들만의 낭송회는 아닌 문학적 순간 창조로서의 낭송회"는 어떤 분위기일까? 가령 아이오와 대학 주변부에서 수시로 행해지는 작가들의 낭송회 자리. 몇 안 되는 독자들, 그것도 동료 작가들, 이 피곤한 논쟁을 일삼는 그런 자리인지? (홍대 클럽의 평일 공연과 다를 게 뭔가!) 보들레르의 <뱀파이어>를 카바레 탁상 위에 올라가 마구 낭송하는 '랭보 삘의' 불란서 양아치 동영상이 있나 싶어 유튜브에 검색해봤더니 기절초풍할 만한 것이 있긴 하다. 차마 말할 순 없고, 나중에 검색해보시길. 정훈병 시절, 정훈장교와 고흐전(展)을 갔을 때의 충공깽이 새록새록.

 

아, 할 것 없는 방구석, 그렇다고 눈을 쓰긴 싫고, 그럼 무엇을 해야 하나.

결국은 연애뿐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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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또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