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부활>에서 기타 치는 김태원은 말한다.
"내가 얼마나 외롭고 가난한지 말할 순 없어요. 말하는 순간 구차해지니까요."
약속이 모두 취소되었을 때 나는 몹시 허탈했고, 그 정도가 지나쳐 웃음이 났다.
약속을 위해 나는 상당히 구차해져야 했고, 주말 약간의 자유를 얻기 위해 이렇게 인간이 구질구질해질 수 있는가,
를 경험하며 몹시 우울한 주중을 보냈는데, 이런 내 맥락과는 상관 없이 친구들은 약속을 배반했고,
결과적으로 남은 것은 '승낙을 위해 얼마든지 구질구질해질 수 있는 인간 이준하'뿐.
(이는 어쩌면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킬 게 대체 뭐가 남아 있다고 그깟 구차함에 상처 받는가.
친구를 위한 내 입장의 손상은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지만 어쨌든 허가자와 구걸하는 처지 사이의
구차하기 짝이 없는 알력 다툼을 지켜보고, 그 당사자로서 그 상황에 끼어 있는 것은 짜증스러울 정도로 우울한 일이다)
약속 취소를 알릴 때, 나는 그들에게 별 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쾌활하게 웃지도 않았지만)
그들은 이런 내 맥락을 알지 못했고, 또 알 수도 없으며, 솔직히 알 필요도, 알고 싶지도 않을 것이다.
(만약 그들이 고의적으로 이런 내 맥락에 무관심하며 배반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심각한 투사의 결과로,
심리 상담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무엇보다 말하는 순간 이 구차함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무게의 구차함으로 되돌아올 것 같아서
나는 그게 너무 싫었다.
김태원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방점은 '말하는 순간'에 있는 것 같다.
생각이 발화를 통해 외부로 표출되어 그것이 대기를 부유하는 순간,
'내 생각'은 '음성 정보'로 외떨어진다. 녹음된 자기 음성처럼 낯선 타자성의 발견.
어찌 보면 객관적으로 다시 접하는 주관성의 조각. 거기서 구차함을 느낀다면,
'내 생각'이 이렇게 구질구질했구나, 혹은 이걸 나는 몰랐구나, 하는 당혹감 내지는 인정의 거부 아닐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구질구질한 인생.
로하스하게 살기가 이렇게 어렵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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