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 팝이란 가능한가 :

 다수의 소비를 전제로 하는 소비 문화의 첨병 팝은 필연적으로 예술을 상품으로 만들고,

 감상자를 소비자로 만들고, 체험을 구매와 단가 측정으로 환원하고, 한없는 특수성을

 수학적 보편성으로 탈바꾼다 : 팝의 이데올로기.

 소쉬르의 언어학에 "지방근성"과 "교류성"이란 개념이 등장하는데, 이는 사회적 인간의 산물로

 개인으로 회귀하고 머물고자 하는 지방근성과 타자와 세계로 나아가고 관계를 맺으려고 하는 교류성,

 이 반대되는 힘의 공존과 긴장이 존재한다는 것. 이 개념을 차용하면, 인디는 지방근성에 가까울 것이다.

 개인의 사적 경험, 특수성, 독보성, 유니크함 : 그러나 이것은 팝의 언어로 규정되는 순간

 "한없는 특수성"은 휘발되고 팝의 기호에 의거 재배치되는 현상을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인디 팝은 과연 가능한가? 이 상반된, 서로 반대로 나아가려는 힘은 공존할 수 있는가?

 팝의 기호를 수용하여 갖고 노는 개인의 특수한 경험은 끝끝내 탈주할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그것마저 새끈한 굿즈로 배열하여 쇼윈도 안쪽에 에디팅하는 팝의 포용력이 더 강력할까.

 

 삐삐 밴드의 <불가능한 작전>을 시디로 구해 들어보았다.

 이제 거의 10년 전의 음반, 그것도 당시 "문화 혁명"급으로 추앙 받던 밴드의 두 번째 (징크스) 앨범을

 평가하는 게 뭔 의미겠냐만, 삐삐 밴드는 아주 영리하게 당시의 록 트렌드를 잘 흡수해왔다는 느낌.

 1집 <문화 혁명>이 90년대 초 영국을 휩쓴 기타 팝, 백화점식 팝,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블러(Blur)의

 방법론을 당시 한국을 휩쓴 '신세대론', 'X-세대론' 세대 담론과 버무린 후 이윤정의 흥미로운 포지셔닝,

 2집에선 빨간 뿔이 쑥 튀어나온 '삐삐'로 형상화된, 이 시의적절하게 등장한 케이스일 것이다.

 예상을 했는지, 아니면 기대 이상인지 삐삐 밴드는 굉장한 주목을 받았고, 가히 2집 징크스란 부담 속에

 그들이 내놓은 <불가능한 작전>은 "팝의 종언"을 선언한 데이먼 알반이 택한 이후 행보, 혹은

 영국 팝 씬의 퇴보, 포스트 펑크, 덥스텝, 일렉트로닉, 트립합, 인디 디스코 등의 장르와 궤를 같이 한다.

 삐삐 밴드의 앨범을 개별적으로, 또 당시 90년대의 한국 사회 구성원들이 들었다면 퍽 놀라운 반응이었을 터.

 그렇다고 삐삐 밴드를 '당시 록 씬을 표절한, 흉내낸' 짝퉁이라고 폄훼하는 것은 아니다.

 삐삐 밴드는 분명 그들만의 스탠스가 있고, 나는 그것이 그들을 집어삼켰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의 유익함은 드넓다.

 

 <불가능한 작전>에서 흥미로웠던 것은 1번, 그리고 2번 트랙의 흐름 :

 앨범 첫 곡과 두번째 곡의 리스팅은 앨범-음반 소비 시장이 두터웠던 과거 록 씬에서 정말 중요했으리라!

 <슈풍크>와 <나쁜 영화>였다. 어쿠스틱 기타 반주와 이윤정의 보컬로 단촐하게 구성된 <슈풍크>는 가히 충격적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나쁜 영화>인데, 어어부 프로젝트의 백현진이 쓴 가사를 '읊조리는' 이윤정의 목소리는

 <슈풍크>와 천지 차이여서 무척 놀랄 것이다. 사실 이윤정의 이중적인 캐릭터는 1집부터 어느 정도 드러난 바 있다.

 <안녕하세요>, <딸기>와 같이 말광량이 여자아이의 '발광'이 한 켠에 있다면, 그 대척점에는 <때로는 그대가>, <빠삐용>에서

 신세대론에 지친 신세대, 결국 어른이 되어 버린 여자의 '짠함'이 존재한다.

 나는 이 대비와 양면성이 무척이나 흥미롭고, 또 <불가능한 작전> 1, 2번 트랙에서 명백히 드러난다고 생각한다.

 

 (사족으로, <나쁜 영화>의 가사를 쓴 백현진은 어어부 프로젝트로 97년 개봉한 장선우의 <나쁜 영화>에

 음악을 취입한 바 있다. 노래 <나쁜 영화>는 96년에 발표되었고, 거기서 백현진은 "가장 싫었던 영화는? 나쁜 영화.
 영화 감독은 영화를 낳고... 극장용 영화는 아니지만 감독은 영화를 낳았다"고 쓰고 있다.

 또 노래가 시작되기 전에 취조풍으로 주고받는 대화에서 이윤정은 "좋아하는 음식은?"이란 질문에

 "껌"이라고 대답한다. 친구가 들으면 진짜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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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또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