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2015. 5. 6. 23:02 from blur girl's diary


 요 며칠간 소설 자료와 JLPT 시험 준비에 파묻혀 있다. 

 금연 이후로 야외로 잘 나가지도 않고, 온종일 코앞의 종이짝만 보고 있으려니 좀이 쑤신다. 

 그나마 한숨 돌리는 건 막 내린 커피를 마시며 사무실 창밖으로 보이는 전경 구경할 때뿐.

 (그것도 그냥 인공적인 뒷산, 건물 뒷편이 고작이지만) 

 

 성희 누나와 누나의 만화에 대한 생각 : 누나의 만화집 <몹쓸 년>은 난 아주 늦게 보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난 학교에서 만난 누나에게 언제나 김수박 쌤 얘기만 해댔다. 게다가

 자기 만화는 읽어봤냐고 농담처럼 힐난하는 누나에게 나는 '빠른 시일 내에 읽겠다'고 뻥을 치곤 했다.

 (사실 그때는 만화를 읽을 생각도 딱히 없었다) 

 약속은 시간이 훌쩍 지나, 내가 입대하고 또 제대를 앞둔 시점에서야 지키게 되었는데,

 어서 누나를 빨리 만나고 싶다. 천천히 술 마시면서 오래 얘기를 나누고 싶다.

 그 어떤 만화보다 '울고 싶은 순간'을 집요하게 그려내고 있는 성희 누나의 만화에는

 누나를 닮은 인물들이 아주 많이, 스쳐 지나간다. 

 대충 뒤로 묶은 머리와 후즐근한 옷차림으로 석관동을 걸어가는 누나의 모습.

 햇살이 귀찮다는 듯 얼굴을 찡그리면서 :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만화의 캐릭터들이 자주 내뱉는 

 '젠장'이란 표현이다. 온갖 고단함에 눌려가면서, '얼큰하게' 울면서, 혹은 '왜 울리고 난리인지' 

 모를 가족 때문에 울면서 누나들은 '젠장... 젠장... 젠장...' 하고 눈물을 흘린다. 

 오래 잊지 못할 것이다. (박재동 선생님의 성의없는 추천사도 잊지 못할 것이다) 


 얼마 전 케이블 방송에서 나온 장범준의 강남 건물 구입 소식을 접했는데, 

 난 몹시 화가 났다. (질투라고 해야 하나?) 아이들은 '벚꽃 연금'이라고 비아냥거렸고, 

 상스러운 욕설을 내뱉는 나 역시 그들과 도찐개찐. 남의 수입에 신경 쓰는 것만큼 무용한 건 없지만서도 

 강남 건물주가 된 장범준(나보다 한 살 어린 노무 시키가!)에게 분노하는 나는, 

 그렇다. 속물이다. 요즘 나는 인정해야 할 것 같다. 

 상황과 조직의 문화를 결국 초월할 수 없는 것일까? 아님 원래 내게 내재된 저속함이 균열된 지면을 뚫고

 만개한 것일까? 나는 이제 일도 안 하고, 온갖 핑계를 대며 도망다니기 바쁘고, 내가 욕했던 사람들을 

 따라 욕 먹을 짓을 자처하며, 그것이 비윤리적임을 알면서 내 잇속을 챙기기 위해 뻔뻔하게 살고 있다.

 이 저열함의 인정이 무서운 것은, 내가 주장하는 이 사회의 빌어먹음이 사실은 그냥 세상에게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고 싶어서, 내가 열세에 놓여있음을 인정하기 싫어서, 우세하고 싶어서 부리는 땡깡에 

 지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그것은 좌우 이념도, 어떤 이론도 중요하지 않고, 그건 선택에 지나지 않고,

 다만 내가 지금 세상에 지고 있다는 느낌, 그걸 타파하기 위해 우세하고 싶은 욕망의 발현일 것이다. 

 한마디로, 자기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가야만 직성이 풀리는 유아틱한 이기주의자. 

 그게 바로 나다. 

 

 이런저런 생각들 탓에 요즘 쬐끔 우울하지만, 

 그래도 앞으로도 계속 지킬 것들을 정리해보았다. 


 1. 금연 

 2. 폭음 절제

 3. 규칙적인 운동

 4. 소식(小食)

 5. 한겨레 종이신문 구독 

 6. 인터넷과 먼 삶 

 7. 계절에 따른 음악 청취 

 

 여기에 집 근처의 천주교구 성당 미사 참석과 자동응답기능이 달린 전화기 설치와 

 친구들의 생일에 맞춰 연하장을 보낼 편지지와 우표만 준비해놓으면 

 완고한 좌파식 라이프 스타일 완성. (꽥!)

 

Posted by 또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