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데이빗 보위를 좋아했다. 그건 적어도 우리에게 대단한 의미를 갖고 있었는데, 함께 음악을 하는 밴드 멤버 넷이 공통적으로 좋아하는 뮤지션이 데이빗 보위가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우리는 많은 음악을 함께 들었고, 서로 삶의 궤적마다 기대온 음악들을 선물 교환하듯이 나눴는데 신기하게도 모두가 동시에 수긍하는 뮤지션이나 밴드는 찾기가 어려웠다. 설마 이 사람을 싫어하겠어? 하는 유명 스타도 청개구리처럼 한 사람은 꼭 싫어했고, 겨우 셋이 열렬히 좋아하는 밴드를 찾아도 나머지 한 사람은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우리는 오기를 갖고 탐색을 거듭했고, 그 결과가 바로 데이빗 보위였다. 그때 우린 너무 기뻐 밤늦도록 <스타 맨>을 부르며, 후렴구의 멜로디가 비슷한 <오버 더 레인보우>를 동시에 부르면서 막 춤을 췄다.
공연 준비로 정신이 없어지던 시간 전에, 우리는 우연히 제주도에서 합숙하며 연습할 기회를 얻었다. 우리는 정말 들떴다. 달력을 들먹이며, 저가 항공사의 사이트를 몇 번이나 뒤적이며 항공편을 알아보았다. 무엇보다 나를 설레게 한 것은 합숙보다 비행기 이륙의 순간이었다. 우리가 함께 비행기를 타고 이 망할 서울을 떠나다니. 그것은 그 순간 영원히 끝나야 할 꿈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멤버의 일정 문제로 제주도 합숙은 없던 얘기가 되었다. 그 역시 대학 졸업식엔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때 만든 노래의 제목은 <데이빗 보위는 위대하다>이다. 꿈만 같아 모든 시간이 가만히 손을 얹은 채… 하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였는데, 개인적으로 도입부를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뒷부분은 잘 풀리지 않았고, 결국 노래는 합주하지도, 발표되지도 않았다.
지난 주말에는 어째선지 라디오에서 카펜터즈의 노래가 연이어 나왔다. 카펜터즈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밴드 멤버의 목소리가 생각난다. 그 다정하면서 엄격한 목소리가. 또 다른 지인은 오늘 데이빗 보위가 암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알려주었고, 나는 우리가 다함께 좋아하던 데이빗 보위가 지구를 떠나 스타맨이 되었다는 사실과 함께 또 한번 나의 잃어버린 밴드를 떠올렸다. 밤운전을 하면서도 나는 종종 그들을 떠올리면서 혼자 낄낄거리고, 소리내어 웃고, 사무친 다음 조용히 미소짓는다. 나를 진실로 웃게 하는 건 그들이고, 그 사실에 나는 이제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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